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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논설위원 제주도. (윤대헌기자)
설을 맞은 제주도 고향 마을은 평화로웠다. 200호 남짓한 중산간 마을이지만 공동목장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올라 외지에 살던 젊은이들이 심심찮게 귀향하는 터여서 물산과 인심이 박하지 않았다. 귤 농사는 기본이고 비닐하우스 농사로 한라봉과 키위를 재배하는 데다 400억원이 넘는 공동목장 매매대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돈줄이 비교적 마르지 않은 덕분이다.
특별히 누가 면 소재지나 읍내 다방에 자주 출몰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소위 ‘다방농민’이 있을 만한 조건은 갖춘 셈이다. 어느 집은 육지 사람에게 팔았던 땅을 되샀다는 얘기가 있고, 누구는 골드키위 재배로 꽤 돈을 벌었다는 말이 들리는 걸 보면 실제 다방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겠다 싶었다.
설 전날 동네 청년들이 폐분교 자리에 지은 천장 높은 실내체육관에 모여 족구를 하고 윷놀이판도 벌이는 모습엔 이 고장 출신인 게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다방농민’들을 만나면서 이런 평화로운 인상은 물정 어두운 외지인의 눈에나 비친 겉모습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속깊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들에게서 전에 없던 상실감과 분노를 보았다. 사실 고향에 가면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을 소박한 신조로 삼아왔다. 괜히 바깥물 좀 먹었다고 나서다 순박한 마을 인심을 흩어놓기라도 할까봐 적이 걱정한 탓이었다.
외지인이 보기엔 ‘평화로운 제주’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이런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구제역’과 ‘석 선장’ 때문이었다.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라든지 하는 것 등은 얘깃거리 축에도 끼지 못했다.
상실감의 기저엔 농민이 무시당하는 데 대한 반발심이 깔려 있었다. “무사, 우린 다방에서 커피 마시면 안되여?(왜 우린 다방에서 커피도 못 마시느냐)”라는 항변에서처럼 그들은 다방농민이라는 비아냥에 상처입고, 보상금으로 해외여행 갔다는 말에 속이 문드러져 있었다.
구제역에 이르자 그들의 심사는 더욱 뒤틀렸다. 제주도가 무슨 걱정이냐고 물었다가 “모르는 소리 말라”는 역정까지 들었다. 20여 축산농가가 날마다 축사 주변을 지키고 감시하느라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축산농들은 수천명의 관광객이 매일 전국에서 비행기와 배로 드나드는 판에 구제역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설날에도 일부는 마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축사 주변에서 방역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급기야 다방농민들의 입에선 “대통령은 구제역이 그토록 창궐하는데 왜 걱정하는 시늉만 하느냐”는 울분까지 터졌다.
설 직전 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유치 약속은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이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거론하며 “전국 인구의 6%밖에 안되는 농민은 큰 표가 안되니 버리겠다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봐도 농민은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 아니냐는 것이다.
불똥은 언론으로도 튀었다. 310여만마리의 소·돼지 등 가축이 생매장됐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50%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흥분했다. 방송 등 언론에 대한 믿음을 접었다며 “촌에 산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아느냐”고 했다. 압권은 공항까지 차로 배웅해 준 친구의 말이었다.
“석 선장은 무사 경 하영(왜 그렇게 많이) 테레비에 나왐서(나오는 것이냐)? 해적으로부터 구출이야 잘 했주마는 구제역 보도도 해야 할 거 아니라게.”
“거 누게고, 최시중이 방송을 다 잡아부난(장악해버려서) 경(그렇게) 된 거 아니라.”
‘구제역’ ‘석 선장’에 분노한 농심
조용하던 나의 고향 마을도 더 이상 정치에 둔감한 곳이 아니었다. 내년 선거에 대한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단계는 아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론도 설득력이 높지 않았다. 농민들은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오히려 많았다. 무상급식에 대한 기대 역시 그다지 높지 않았다. 작은 시골 초등학교여서인지는 몰라도 스스로 재배한 농산물이 학교 급식재료로 소비되면 그 수익이 자기에게 떨어질 것이란 인식은 거의 없었다.
상경하면서 우리 마을이 이 정도면 형편이 어려운 다른 곳은 어쩌랴 싶었다. 농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포기한 듯 보였다. 이 대통령은 결코 레임덕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벌써 레임덕은 시작되고 있었다.
조그만 산골 마을의 이런 기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단지 사납고 매서운 바람이 농촌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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