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늘가에 붉은빛 말없이 퍼지고

물결이 자개처럼 반짝이는 날

저녁해 보내는 이도 없이

초라히 바다를 넘어갑니다



어슷어슷하면서도

그림자조차 뵈이지 않는 어둠이

부르는 이 없이 찾아와선

아득한 섬을 싸고돕니다



주검같이 말없는 바다에는

지금도 물살이 웃음처럼 남실거리는 흔적이 뵈입니다

그 언제 해가 넘어갔는지 그도 모른 체하고 ─



무심히 살고 또 지내는

해 ─ 바다 ─ 섬 ─ 하고 나는 부르짖으면서

내 몸도 거기에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신석정(1907~197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시는 신석정 시인의 등단작으로 1931년 ‘시문학’ 10월호에 실렸다. 하늘에는 노을빛이 넓적하게 번지고, 바다의 물결은 금조개의 껍데기 조각처럼 반짝인다. 저무는 해는 바다를 넘어가고, 어둠은 섬을 둘러서 감싼다. 바다에는 자개처럼 빛나던 물살의 흔적이, 웃음처럼 남실거리던 물살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석양도 어둠도 바다도 섬도 그냥 무심하게 살 뿐이다. 무언가에 매이지 않고, 쌓인 근심이 없이 살 뿐이다. 오직 차분하고 평온할 뿐이다.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자신도 풍경 속의 저녁 해가 되거나 바다가 되거나 섬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풍경은 이 시에서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선물이 되기도 한다. 재거나 견주거나 나누지 않으면 환히 통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간택(揀擇)을 멀리하고, 따르거나 거스르는 순역(順逆)도 두지 말라고 일렀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