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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유모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
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
아기가 다칠 것 같다
내 눈빛에서 튀어나가는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
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
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내 안에서 조용히 무릎 꿇는 것이 있다
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
표정은 얼굴로 가서 입 벌리고 멍해진다
김기택(195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기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시인은 덜컥 겁이 난다. 자신의 눈빛에는 이빨과 발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눈빛에는 거칠고 사납고 치려는 기세가 있기 때문에. 아기는 이러한 시인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편하고 걱정 없이 좋아하며 앉아 있다. 아무런 꾸밈이 없이 순진하고 천진한 아기를 대하니 시인은 쥔 주먹을 풀게 되고 예비하고 있던 거친 말들을 버리게 된다. 아기의 표정에는 무언가를 잃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색이 없다. 높은 성벽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 생각도 없다.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한 마음뿐이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마음뿐이다. 막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어린 꽃봉오리 같을 뿐이다. 그래서 아기를 보면 누구나 저절로 웃게 되고, 마음이 흡족하게 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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