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름의 고되고 긴 더위 탓일까. 쾌청한 가을의 끝이 아쉽다. 곧 겨울이 오겠지. 찬 공기 가득 실은 매서운 바람도 데려오겠지. 오늘은 24절기 중 상강이다. 밤과 낮의 기온차가 커지고 서리가 내리는 시기다. 농경사회였다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추수와 겨울맞이에 집중했을 시기.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붉게 물든 단풍과 활짝 핀 국화꽃 나들이의 여유를 만끽한다.

이러한 호사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이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생각의 탄생> 저자인 생리학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말처럼 “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는 일”이다. 패턴 인식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에 보다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패턴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은 인류문명이 유지되고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4차 산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도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패턴 인식능력이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패턴에 적응하고 대처하기 위한 생활안내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지정해 둔 기념일을 제외하면 수백년 전과 비교하여 별다른 정보가 추가되지 못했다. &lt;마인드세트&gt;의 저자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미래를 덮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는 데 필요한 지식의 가장 커다란 원천은 바로 신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도해 봤다. 앞으로 한 달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매해 10월21일부터 11월20일까지 한 달간, 국내 포털에 노출된 언론사 뉴스 약 150만건 중 반복출현 및 신규출현 어휘를 추출하고 그 패턴을 분석했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결과를 경제이슈, 생활이슈, 사회사건, 정치외교 등 크게 4가지 패턴으로 분류했다. 첫째, 경제이슈에선 코스닥·관광객·개발·소비자·스타트업 등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특히 ‘관광객’은 중국·의료·사드·유치 등의 연관어휘와 짝을 맺었고, ‘개발’은 사물인터넷·정보통신·자동차 등의 신기술 발표가 많았다. ‘소비자’는 물가와, ‘스타트업’은 지원과 짝을 이뤘다. 둘째, 생활이슈에선 청약·취약계층·겨울 등이 다수 언급됐다. ‘청약’은 아파트·통장·서울·자격·경쟁 등과 짝을 이루어 부동산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취약계층’은 지원과, ‘겨울’은 추위·준비·조류독감 등과 상관성을 보였다. 셋째, 사회사건에서는 재건축·나포·환경부·파업·집회·나눔·봉사 등이 주로 언급되었다. 이 중 ‘재건축’은 압수수색·이사비용·건설 등과 함께 언급되었고, ‘나포’는 중국·어선·북한·서해 등과, ‘환경부’는 국감·물발자국·제품·부평·다이옥신 등과 높은 상관성을 갖고 있었다. 끝으로 정치외교에선 유엔·시찰·제주 등이 거론되었다. ‘유엔’은 인권·추모·난민 등과, ‘시찰’은 김정은·자동차·투자 등과, ‘제주’는 한라산·북핵·6자회담·한미관계 등과 2차관계로 연결되어 나타났다. 칼럼을 다시 쓰는 한 달 후쯤엔, 위의 패턴분석을 통한 예측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같은 별을 보더라도 관심사에 따라 서로 다른 상상을 하듯, 예측결과에 대한 해석과 반응도 제각각일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인생도 예측할 수 있을까. 만약 과거에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실수들을 단지 예외적인 사건의 연속이라는 마음속 변명으로 늘어놓는다면, 패턴분석도 소용없는 일일지도.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데이터에는 인간의 경험 자체에 대한 가치가 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인생을 예측하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패턴분석보다는 자기성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조들은 수세기 동안의 관찰결과를 후손에게 DNA와 기록에 실어, 하늘의 변화를 달력으로, 별들의 변화를 생존을 위한 쪽지로 변환해서 물려주었다. 우리 인생에서 하늘과 별은 무엇일까. 우리는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주려고 하는 걸까. 궁금하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