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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단식하는 아버지, 똑같은 표정으로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대통령, 아픈 이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사람들. 비슷한 풍경이 계속된다. 위로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말도 허무하고, 프란치스코 교황 개인의 진정성에라도 기대보려는 우리의 노력이 눈물 난다. 완전한 절망은 체념을 낳는다. 체념하는 순간 나의 괴로움은 물론 타인의 괴로움에도 눈을 감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절망 끝에 체념하지 않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웹툰은 웹(web)과 만화(cartoon)를 합친 신조어다. 웹을 통해 유통, 소비되는 만화라는 뜻인데 ‘가장자리에서 연결되는 만화’다. 이는 인터넷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기도 하다. 중심에서 전체를 향해 발신하는 미디어와 달리 가장자리와 가장자리가 연결되어 인터넷이 된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웹툰이라는 개념이 정착하기 이전 초기 웹툰들(<광수생각> <스노우캣> <파페포포메모리즈> <마린블루스> <포엠툰> <아색기가> 등)은 게시판, 메일, 블로그, 싸이월드 등을 통해 가장자리에서 가장자리로 확산되어 모두에게 다가갔다.

웹툰이 정착되고 난 뒤 ‘포토숍 민주주의’라 규정할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웹툰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탄핵반대 만화를 게시했다. 이후 정치적, 사회적 사건에 대해 웹툰 작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 자신의 뜻을 밝혔다.

최근 여기에 디지털 입력장치인 ‘태블릿’이 추가된다. 디씨, 루리웹, 오유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 수많은 이슈가 태블릿과 포토숍을 통해 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팟빵직썰처럼 웹툰을 활용해 시사이슈를 발 빠르게 정리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웹툰은 태블릿과 포토숍을 활용해 콘텐츠가 생산되고, 가장자리와 가장자리,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유통된다. 이건 기존 출판만화와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로운 생산, 제작·유통이다. 조금 더 보태면 소비의 방식도 마찬가지다.(오늘 이야기할 이슈가 아니라 생략)

조금 더 쉬운 방식으로(디지털 장치를 활용해), 가장자리에서 오늘을 이야기하는 대표적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만화를 선보이는 박건웅이다. 작가는 전통적 출판만화의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동시에 가장 웹툰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는 8월12일 자신의 블로그에 ‘약속’이라는 웹툰을 올렸다. 이 웹툰은 제대로 된 세월호 사고의 원인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나선 유민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약속’은 박건웅 작가의 블로그라는 가장자리에서 시작해 또 다른 가장자리인 우리의 스마트폰과 PC로 연결되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많은 이들이 공유했다.

만화작가 박건웅 (출처 : 경향DB)


강풀 작가는 8월14일 자신의 블로그에 ‘사람이 있다는 제목의 웹툰을 발표했다. 그는 만화에서 ‘한번만 돌아봐주세요. 유민이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돌아봐주세요. 함께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함께 말해주세요. 거기 사람이 있었고,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가장자리에 있는 우리의 힘은 미약하다.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절망하고, 또 절망과 절망이 이어지며 체념한다. 가장자리에서 단식을 하고, 힘겹게 교황의 권위에 기대 편지를 전달한다. 가장자리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분들에게 다가가 보려 하지만, 거대한 벽이 우리의 길을 막을 뿐이다. 가장자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일은 우리를, 그러니까 가장자리와 가장자리를 연결하는 일이다. 가장자리와 가장자리가 연결되어 치밀한 그물망이 되면, 우리의 이야기가 그 그물망을 통해 크게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가장자리와 가장자리를 연결하자.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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