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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자전거 탄 풍경의 ‘보물’이라는 노래 가사의 한 대목이다. 얼음땡, 오재미, 공기놀이, 실뜨개, 전기놀이까지…. 이렇게 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옛날 옛적 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원 가느라 놀이터가 텅 빈 지는 오래됐고, 학원에서 친구를 만나도 각자 스마트폰을 하느라 바쁘다는 게 요즘의 차이점이란다. 스마트폰만 쥐여주면 하루 종일 심심할 틈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멍 때리게 해주는 학원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푸념이 교사들에게서 나올 정도다.
이 지경이니 팀 플레이나 공동체 생활은 물론, 대화라고 잘할 리 만무하다. ‘직접 전화하지 않아도 음식 주문이 된다’는 기능을 내세운 배달 앱이 부쩍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이유다.
요즘 퇴화 중인 건 대화 능력뿐만이 아니다. 미술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르고, 붙이고, 찢기 위해서는 손 근육이 발달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마우스와 스마트폰 터치 패드에 익숙해져 있다. 클릭 속도가 빠르고 터치 능력은 높을지라도 손을 자유롭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교사들의 전언이다.
몸을 써서 배워야 하는 기능을 단시간에 집중해서 배워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연습하는 동안의 그 공기 말이다.
미칠 듯이 힘들지만 분명히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을 때의 그 기분은 또 어떤가. 땀이 뚝뚝 떨어져도, 온몸이 쑤시고 힘들어도 그 성취감만은 대단하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뿌듯함이란! 사람은 그렇게 쑥 자라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방학만큼 제격인 시간이 있을까.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금이 한창 이런저런 캠프가 열릴 시기다.
요즘은 캠프도 ‘스펙’이라서 노는 것보다는 뭔가를 배우는 캠프가 인기라고 한다. 엄마들의 정보력에 따라 참가할 수 있는 캠프가 달라진다고 하니, 그 경쟁력 있는 캠프가 노는 캠프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캠프는 머리 대신 손발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캠프일 것이다.
인천시 하천살리기추진단 주최로 열리고 있는 인천청소년하천체험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 (출처 : 경향DB)
그래서 조금 다른 방학을 보내는 청소년들의 시간을 소개하려 한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 14회를 맞은 ‘인천바로알기종주’다.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이 프로그램은 옹진의 섬과 강화 등의 농촌지역,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까지 인천 전역을 골고루 걸을 수 있도록 코스가 짜여 있다.
모든 짐을 참가자 개인이 책임지고 걷는 것도 특징이다. 도보 및 야영만으로 스마트폰 없이 정해진 구간을 함께 걸으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6박7일을 경험한다. 제 몸도 힘들어 짜증내던 아이들이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동네 친구가 생긴다는 점이다. 유치원도 모자라서 산후조리원부터 동기를 따진다는 요즘,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비싼 돈 들여 외국에 나가놓고도 낮에는 영어 공부, 밤에는 수학 선행 학습을 하느라 갇혀 있는 일주일보다 내가 사는 동네를 제대로 걸어보는 일주일이 훨씬 근사한 것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동화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나 전환은 관문을 열어젖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관문을 열기 어려울수록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불 뿜는 용을 물리치는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비슷해서 무균인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캠프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모든 아이들에게 1년 동안 세계여행을 시켜주면 시야가 넓어지면서 뇌가 창조적으로 리셋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한 바 있다. 김 교수님의 말씀에 적극 찬성하며 한마디 보탠다. 먼저 방학 캠프부터 바꿔보는 건 어떨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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