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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이 지난 9월 기준 217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 250만명으로 가장 많았다가 코로나19로 감소한 이후 올해부터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도 내년 외국인노동자 입국 허가 인원을 역대 최대인 11만 명으로 결정했다. 2025년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가 250만명을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이주배경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공식적으로 다인종 국가로 분류되는데 한국도 정말 머지않았다.

국경을 오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출입국 행정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려면 법무부 장관이 발급한 사증(비자)이 있어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법무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각 나라의 영사가 비자 발급 권한을 가지고 있다. 몽골 사람이 한국에 오려면 울란바토르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캄보디아 사람은 프놈펜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해서 발급받아야 한다.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한국에 자녀를 둔 외국인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오려면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 문제는 각 나라 대사관에서 판단하고 있는 비자 발급 기준이 형식적이거나 소극적이어서 구체적인 현실에서 지나치게 불합리한 경우라도 이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외국인이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경우 이를 법원에서 다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자 발급과 관련된 법률은 출입국 관리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할 권리를 보장하거나 국내로 입국할 외국인의 사익을 보호할 규정이 아니므로 이를 법원에서 다툴 ‘법률상 이익’이 없어 원고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판례를 쉽게 설명하려고 수십번 노력해 봤지만 늘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아니다. 왜 아빠가 자식을 보러 오는 것이 한국법이 보호하는 ‘이익’이 될 수 없는지, 최소한 법원에서 판사님께 억울한 사정을 설명할 기회조차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인지.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동그란 아이의 눈을 보며 이야기할 자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정은 이렇다. 캄보디아 국적 외국인 노동자 A씨는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이후 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8년 정도 일하면서 여러 사정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법에 정한 체류 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A씨는 한국에서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둘 사이에서 아이도 태어났다. A씨는 자녀를 위해 안정적인 상황에서 가족을 꾸려가기 위해 2019년 캄보디아로 자진 출국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한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비자 신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몇년째 비자 발급이 거부되고 있다. A씨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체류 기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젖먹이 시절 금방 돌아오겠다며 아이 곁을 떠난 아빠는 아이가 네 살이 되어 걷고 뛰고 있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A씨는 얼마 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례에 맞서 어려운 법적 다툼을 시작한 것이다. A씨와 가족들이 법원에서 판사님께 하고 싶은 말은 어려운 법리가 아니다. 가족을 만나고 싶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이익은 없다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연재 | 시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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