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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수많은 때 이른 죽음들을 목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59명, 146명, 151명. 이태원 참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고, 그 뒤를 이어 유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산재 유가족들의 얼굴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으며 오래전 자신이 겪은 참사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기이하게도 끔찍한 재난일수록 피해자들에 대한 악의적인 말들이 튀어나온다. 놀러갔다가 죽었다는 말이 무심코 던져지는 사회에서는 일하다 죽었다는 말도 무겁게 다뤄지지 않는다. 생존자는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기도 하고,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 역시 종종 무시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어진 ‘재난참사 피해자권리 매뉴얼’에는 세월호 피해자들, 유가족들이 사회의 무심한 말들을 겪어낸 상처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사회는 각자가 처한 고통을 충분히 듣고 헤아리기보다, 자의적으로 고통의 크기를 재단하고 재난 피해자의 자격을 묻는다.”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는 신속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종종 누락된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도 아니라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우연히 넘어져 압사되었을 뿐이라고 사고를 납작하게 말하지 말자. 언론은 무책임한 세월호 참사 당시의 보도 행태와는 다른 정확하고 신중한 태도로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 그리고 수습 과정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2016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영국의 힐즈버러 참사 유가족들을 만났다.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 사건’은 1989년 4월15일 발생했다. 영국 축구협회컵 준결승전이 힐즈버러 축구장에서 열린 날 96명이 사망하고 766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신속하게’ 술 취한 리버풀 팬 폭도 5000명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사고라고 규정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고조사보고서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나왔다. 유족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술 취한 폭도로 규정한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망자의 40%인 38명은 10대였다. 그로부터 희생자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는 데 27년이라는 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독립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재조사가 이뤄졌다. 사고 원인은 뒤집어졌다. 당시 축구장에 있던 경찰이 몰려드는 관중을 통제하지 않고 모든 출입구를 개방해 한꺼번에 대규모 인원이 들어오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이태원 참사만큼은 신속한 사고 수습에 피해자의 권리가 뒤로 밀려나지 않아야 한다. 정확하고 신중한 진상규명의 결과가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유가족들의 눈물과 슬픔을 담보로, 희생에 희생을 덧대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재난참사에 대한 책임 있는 조사와 조치를 해야 한다. ‘세월호 이후’의 참사다. 이번만큼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과 책임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연재 | 시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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