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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긴 연휴 동안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회포를 푸셨는지요? 아니면 혹 서로 다투다가 깊은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는지요?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야 할 시간에 가정불화, 생활고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온통 가족 이야기 일색입니다. 공중파를 통해 전파를 탄 <가족끼리 왜 이래> <펀치> <장미빛 연인들> 등의 드라마는 모두 ‘3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부모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병역비리의 아들을 구하려다가 자신이 파멸하는 국무총리 후보자도 등장했습니다. 1400만 관객을 넘긴 <국제시장>도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인터스텔라>는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 덕분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가족 담론이 넘치는 걸까요?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대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1% 초상류층의 속물의식에 질려버린 국민들이 진정한 가족을 갈구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전통적 의미의 가족 해체가 워낙 심각하게 진행되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이순구는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너머북스)에서 “조선에서 가족은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다. 조선은 사회 운영의 일정 부분을 가족에게 일임했다. 부부가 중시되고 교육과 복지가 많은 경우 가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다 보니 조선에서 가족은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심지어 조선 말기에는 국가는 없고 집안만 있을 정도였다. 조선에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최근에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못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청문회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국민들은 가족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가족해체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를 포기합니다. 통계청은 올해 전국의 1인 가구가 500만가구(27.1%)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0년 후에는 3분의 1의 가구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때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70%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된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모델은 사실상 완전히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몸문화연구소가 엮은 <우리는 가족일까>(은행나무)에서는 10명의 인문학자와 필드워커들이 지금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참모습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가족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동거, 독신자, 미혼모, 편모나 편부 가정 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도 가족은 해체될 수가 없다. 가족의 첫 번째 기능이 사랑과 정서적 결속감, 안정감에 있다면 동거나 동성결혼이 가족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가족에게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정서적 결속의 부재”라고 말입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화목한 가족의 역사는 약 150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가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등을 포기한 ‘5포 세대’는 가정을 꾸릴 의욕조차 없습니다. 통계청이 13세 이상 남녀를 조사한 결과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38.9%로 2년 전보다 5.3%포인트나 높아졌습니다. 작년에 이뤄진 이 조사결과는 설 연휴기간에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비율까지 더하면 40% 이상이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나 결혼적령기인 30대는 50.7%로 절반이 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며, 한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이제 1인 가구가 “한국 사회와 가족관계의 현실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결정적인 고리, 즉 ‘독신사회’의 탄생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혼싱글맘이나 미혼싱글맘이 이끄는 가족이 불완전한 미완의 가족이라는 인식부터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은 가장 따뜻한 공간으로 경험되는 동시에 큰 상처를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상처만 안겨주는 가족은 거듭나야 합니다. 해체를 뒤집으면 재구성이 됩니다. 가족은 구성원의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폭력과 증오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아름다움과 사랑이 들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1960년대 후반에 유럽을 휩쓸었던 공동체 실험처럼 실험 가족도 가능하다는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동성애자 커플, 동거, 공동주거 등의 형태로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출현”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혈통의 재생산이 아니라 정서적 유대감이 가족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세상에서는 “베를린 장벽보다 더 높고 두터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남녀부모와 자녀라는 하나의 구조로 이상화되었던 가족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구성원이 평등하고 정서적 유대가 이뤄지는 조직이라면 형식과 내용이 어떻든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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