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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이면서 독서운동가로 맹렬하게 활동하던 한 교사가 2월28일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가졌던 경험을 정리한 <책으로 크는 아이들>과 가정 독서모임의 경험을 학교 현장에 접목해 실천했던 이야기를 담은 <도란도란 책모임>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는 백화현 교사입니다. 1년만 더 교사로 일하면 명예퇴직의 자격을 얻지만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며 그마저 뿌리치고 서둘러 학교를 떠났습니다.

백 선생은 인간에게 ‘성적’과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존재함, 그 자체’라고 말해왔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존재의 소중함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타인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집단따돌림, 집단폭력, 자살 등이 계속 늘어난 것이 증거입니다. 최근에는 자신이 책을 읽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책 읽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책따’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군요.

백 선생이 ‘책모임’을 꾸린 이유는, “ ‘책 속 인물들’을 빌미 삼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고민과 생각들을 굽이굽이 풀어놓을 수 있고, ‘책 속 사건들’을 핑계 삼아 마음껏 웃고 울 수 있”었으며, “내가 아닌 ‘너’의 마음과 생각 속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며 그가 물건이 아닌 사람, 많은 사연과 생각과 아픔과 고뇌와 꿈을 지닌 나와 같은 ‘사람’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 선생은 ‘엄마’부터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는 엄마들과 교사들을 자유롭게 만나 아이들의 미래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기 위해 교직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백 선생은 학교를 떠났으되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학교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미 4월에는 엄마와 교사들을 만날 일정으로 수첩에 빈틈이 없다는군요.

저는 백 교사의 포부를 들은 날, 밤늦게 사무실에 들어와 김경집 선생의 <엄마 인문학>(꿈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25년 이상 ‘인간학’을 가르쳤던 저자는 2012년 2월 말에 대학 교단을 자진해서 떠났습니다.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서운동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엄마가 시작하는 인문학 혁명”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 학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생각이 변하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을 때,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은 지금이 혁명의 최적입니다. 혁명하려면 연대해야 합니다. 틀을 깨려면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요.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엄마들의 혁명입니다. 엄마부터 시작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도 아니고 재벌 총수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들입니다! 동시에 가장 유연한 사람도 엄마들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멋지고 유연하게 혁명할 수 있는 주인공은 엄마들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으세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 아들을 위해서!”

그는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단 3퍼센트의 확률을 위해 최소 15년에서 20년 동안을 투자해야” 하는 지금의 교육은 ‘가정 파괴범’이라고 말합니다. ‘속도’와 ‘효율’의 낡은 패러다임에 맞춘 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은 이제 연애·결혼·출산·주택·취업에 이어 꿈과 희망까지 잃어버린 ‘7포 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장 시간 공부를 해서 최고의 스펙을 쌓은 결과가 고작 이렇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은 부모들은 은행 부채가 딸린 집 하나만 달랑 있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는 최근 펴낸 <생각의 융합>(더숲)에서 “인간의 두뇌는 속도와 효율의 측면에서 볼 때 컴퓨터 알고리즘에 뒤지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많은 지식들과 정보들을 섞고 묶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컴퓨터 알고리즘의 한계를 채우는 것이 미래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융합의 가치이고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텍스트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텍스트로 엮어보고 해석하는 것이 창조와 융합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의 융합>은 콜럼버스와 이순신, 코페르니쿠스와 백남준, 히딩크와 렘브란트, 정약용과 김수영 등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생각의 점을 잇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두 독서운동가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은 엄마의 서재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읽히는’ 존재를 넘어서 ‘읽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가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과 삶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엄마들이 진정한 본색을 드러낼 때입니다. 엄마가 변하면 아빠도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고, 나아가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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