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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정보가 넘치고, 뉴스의 허울을 쓴 가짜뉴스가 판친다. 전통 언론은 팩트체크라는 형식으로 진위를 검증해 보여주지만 이미 퍼져나간 가짜와 허위의 위력을 잠재우지 못한다.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권력도 가짜와의 싸움을 벌이지만 역부족이다. 최근 한강실종사망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있는 수사기관이 그러하다. 각종 음모론과 추측이 끊이지 않고 방구석 코난과 돈벌이 유튜버들이 쏟아내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응하느라 경찰은 힘이 빠진다.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받은 경찰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사태이지만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급기야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수사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코로나19와 관련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도 방역 당국을 힘들게 하고 있다. 전염병처럼 전파력이 대단해 인포데믹(Infodemic)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 편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정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각종 선거가 끊이질 않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 폐해가 심각하다. 구독자가 많은 미디어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담은 가짜뉴스 공장이 된 지 오래고, 내 편이 퍼뜨리는 정보만 골라서 보고 듣는 확증편향이 표심을 왜곡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사와 잘못된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셜미디어가 순기능 못지않게 위협 요소가 된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위를 식별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란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정식 기사의 모습으로 변장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정통 언론도 가짜뉴스를 진실로 알고 퍼뜨리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으로 활자화되어 유통되면 신뢰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대화하다 보면 그의 몸짓이나 표정, 말투 등을 통해 거짓인지 판단할 기회가 있지만, 활자는 즉각적으로 확산되고 수많은 사람이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친구나 가족, 지인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정보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 폐해가 크다 보니 규제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이용자에게 의심하고 확인하라는 조언만으로 예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보 생산 유통자와 이용자의 자율에 맡기기에는 이미 오염의 정도를 넘어섰다. 유해 정보 및 혐오 발언과 관련하여 유튜브 동영상 등의 가짜뉴스를 단속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들려오고, 규제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집권 여당의 기획은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짜뉴스 근절과 처벌에 관한 입법안이 여러 건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개인을 처벌하고 포털사이트의 책임 소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짜뉴스 방지 입법화에는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반대가 만만치 않다. 개인에게 손해액의 최대 3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무는 방안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반발한다. 이런 비판을 피하려면 우선 규제 대상 허위정보의 개념 정의와 범위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개념을 좁게 잡고 이에 대한 단호한 규제여야 위헌논란도 피하고 규제의 실효성을 꾀할 수 있다. 새로운 입법도 필요하지만 형법, 방송법, 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률과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사기죄가 인류와 함께한 범죄인 것처럼 가짜뉴스의 역사도 인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한다. 아무리 사기범을 처벌해도 사기는 끊이지 않는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다. 이득을 얻기 위한 가짜뉴스의 생산을 형벌만으로 차단할 수 없는 이유다.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대응책은 한계가 있다. 기성 언론은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사용자에게 주기적으로 경고를 보내야 한다. 기자와 전문가, 시민이 참여하는 팩트체크 플랫폼도 확대해 팩트체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 유통의 장이 서야 가짜뉴스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을 만든 인터넷 기업과 서비스사업자는 가짜뉴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신고된 가짜뉴스를 신속하게 차단할 기술적 방법을 고안할 의무도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뉴스가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플랫폼 사업자를 온라인 콘텐츠의 단순 전달자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성 신문사나 방송사와 달리 취급할 근거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누려온 면책특권의 지위를 거두고 그들에게 법적 의무를 지우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책임을 다하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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