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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을 마치고 떠날 때는 남은 치약이나 비누를 배에 두고 오세요. 그게 미덕이에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직원이 환경감시선 승선을 앞두고 배에서 지내는 요령을 내게 물었다. 나는 배의 일과시간이나 멀미 대처요령, 식당 청소 당번 같은 걸 설명하다가 ‘소모품을 배에 두고 오라’고 조언했다. 그 말에 내 것 네 것이 또렷한 젊은 직원은 난처한 기색이었다. 불현듯 적선을 강요받기라도 한 표정이랄까. 그 반응에 나 역시 난처했다.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환경운동가들이 섞여 있으니 독특한 장면이 많다. 그중 하나는 한번 배에 가져온 물자는 집으로 되가져가지 않고 어떻게든 여기서 소진한다는 암묵적 합의다. 비누나 치약을 쓰다 남으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방에 넣지 않고, 동료들이 두루 쓸 수 있게 공동 세면장에 두고 온다. 옷이나 신발도 특별한 까닭이 없으면 공유 물품 창고에 두고 간다. 단순히 배에 물자가 귀해 생긴 문화는 아니다. 비행기에 실을 짐을 줄여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물자를 낭비 없이 알뜰하게 쓰려는 의도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해 유럽까지 가면 한 사람당 탄소를 1t 정도 배출한다. 만일 내가 외투와 신발, 치약 등 쓰고 남은 짐 5㎏을 굳이 집으로 되가져오면 누구는 그만큼 멀리서 제 물건을 구해 가야 한다. 이러면 비행기를 타고 왕복 이동하는 물자의 무게는 10㎏이 된다. 반면, 배에 짐을 두고 오면 해당 물자의 왕복 여행을 덜어낸 셈이니 탄소배출량을 그 무게의 두 배치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 그린피스 선원들은 물건을 나눠 가방 무게를 가벼이 하려 애쓴다.

쓰고 남은 물건을 다른 선원들과 나누는 건 낭비를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일 쓰다 남은 치약 100㎎을 버리면 그만큼 어디서 재료를 모아 노동력으로 조합해 치약을 만들고, 포장하고, 배달하고, 진열하고, 구매해 배로 가져와야 한다. 과정 하나하나가 탄소배출이다. 생산과 유통, 소비 모두 탄소배출의 과정이 아닌가. 우리가 치약을 끝까지 낭비 없이 쓰면 그만큼 추가 생산과 소비를 막을 수 있다. 곧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환경감시선에서는 이런 식으로 옷이나 신발은 닳아서 해질 때까지 쓰고, 비누나 치약 같은 소비재는 손톱만큼도 안 남긴다. 낭비 없는 검소한 삶이야말로 환경운동의 기본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근 환경문제에 관심이 몰리면서 이런저런 친환경 요소가 등장하는데, 실상은 ‘그린워싱’ 같은 가짜 친환경이 판을 친다. 전기자동차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로 달리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 전기 배터리는 엄청난 양의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같은 광물을 채굴한 결과다. 무한 생산과 소비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쳇바퀴 위에서 우리는 무얼 만들려고 그렇게 안달이다. 아무리 친환경 제품이라 한들 과잉 생산하고 소비하면 환경오염이다. 과연 ‘그린뉴딜’이니 ‘녹색 자본주의’니 하는 게 말이 되기는 하는 걸까? 자원순환에서 하수는 재활용이요, 중수는 다시 씀이요, 상수는 아껴 씀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덜 해로운 생산이 아니라 절제 있고 책임 있는 소비다.

 
김연식 그린피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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