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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발생 1위인 갑상샘암을 둘러싸고 과잉진료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굳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암까지 진단해서 암환자를 양산하고, 불필요한 수술까지 받게 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작은 암이라도 조기에 진단해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갑상샘암은 완치율(5년 생존율)이 99%에 이르고 있지만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요 대학병원에는 갑상샘암 확진을 위한 검사와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국민 4만명을 매년 ‘암 환자’로 만들어 공포 속에 살게 할 텐가

28세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건강검진을 하던 중 갑상샘 초음파검사에서 0.9㎝ 크기의 혹이 발견되었다. 세포검사 결과 암으로 판정되었고, 건강했던 예비 신부는 순식간에 ‘암환자’가 되어 본인과 예비 신랑, 가족들은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최근 검진기술의 발전으로 작은 종양도 쉽게 진단할 수 있게 되면서, 갑상샘암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 기준 4만명 이상의 국민이 갑상샘암으로 새로 진단받고 위와 유사한 고민을 경험하고 있다. 2001년도 갑상샘암 발생자가 4410명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거의 10배 증가했다. 한국 여성 10만명당 96.8명인 갑상샘암 발생률은 세계 1위이며, 세계 2위인 미국 여성(20.0명)의 5배, 우리나라와 환경이 비슷한 인접국가인 일본(6.5명)의 15배이다. 세계보건기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새로 진단되는 갑상샘암 환자의 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인접지역에서 갑상샘암 환자가 최고로 발생했던 해와 비교해도 3배가 넘는다.

갑상샘암에 대한 가족력이 있거나, 목 주위에 혹이 만져지는 경우 등의 고위험군이 아니면 갑상샘암 검진을 추천하지 않는 영국에서는 지난 10년간 갑상샘암 발생률이 2배도 증가하지 않았다. 영국 여성 10만명당 발생자 수가 6명 미만이고, 전체 인구 대비 사망률도 한국과 비슷하다. 이 통계자료는 조기검진이 갑상샘암 환자 수를 늘리는 데만 기여했을 뿐, 조기 검진을 통한 수술이 실제적인 사망자 수를 줄이지 못했다는 가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암 검진의 목적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여, 완치율을 높이고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자궁경부암, 대장암, 유방암, 위암 등에서는 조기 검진 후 사망률이 감소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조기검진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갑상샘암의 경우, 적극적으로 조기검진과 치료를 해온 한국에서 미세 갑상샘암의 진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술받은 환자의 완치율은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갑상샘암으로 사망한 국민의 수는 2000년 266명에서 2010년 356명으로 호전되지 않고 있다(통계청). 세계보건기구 자료상 2012년 한국인 갑상샘암의 연령표준화 사망률은 10만명당 0.5명으로 미국(0.3명), 일본(0.4명)과 유사하다.

양성종양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는 갑상샘암은 대부분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며, 다른 질환으로 사망하여 부검을 받은 사람 중 3분의 1에서 크고 작은 갑상샘암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갑상샘암이 발견되면, 단지 ‘암’이라는 이유 때문에 92%가 수술을 받고 있으며, 수술을 받은 환자의 12.2%에서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이나 성대마비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한국보건의료연구원). 증상이 없는 사람에서 시행되는 갑상샘암 조기검진은 얻는 이득은 명확하지 않으나, 수술합병증과 평생 호르몬 약에 의존해야 하는 등 손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갑상샘암 조기검진을 추천하지 않고 있다.

갑상샘암 조기검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특별한 치료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국민 4만명을 매년 암환자로 만들어 ‘암의 공포’ 속에서 살게 만든다는 것이다. 첨단 검진기기를 이용한 조기 검진이 일부 질병의 예방에 기여하고 있으나, 특정 질병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환자로 만드는 과잉진단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갑상샘암 조기검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2㎝ 이하의 저위험 갑상샘암은 진단명에서 ‘암’이라는 명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예비신부는 갑상샘암 초음파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했을까?

10배로 늘어난 갑상샘암 환자, 그리고 100%에 가까운 갑상샘암 완치율 이면에는 과잉진단으로 갑자기 ‘암환자’가 되어,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허대석 |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대목동병원에서 가동 중인 최첨단 방사선 암치료기 '트릴로지' (출처 :경향DB)


■ 조기 진단·치료 중요한 ‘생명’을 ‘비용’ 문제로 접근하면 안돼

갑상샘암 진단 논란의 시초는 ‘갑상샘암을 과도하게 진단해서 암 환자가 급증하고,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함으로써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며 경제적인 해악을 초래한다’는 일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으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 마치 집단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처럼 포장되었다. 그들은 30년 전과 비교하여 갑상샘암이 30배가 넘는 발생률을 보이는 반면, 사망률은 거의 변화가 없으므로 이것은 전형적인 과잉진단에 해당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30년 전 한국은 갑상샘암이건 다른 암이건 진단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초음파 기계는 아직 정밀하지 못했고, 갑상샘암의 진단기준도 제대로 없었다. 최근에 초음파 검사가 정교해지고, 검사 자체가 저렴해졌으며, 국민들의 관심도가 증가하여 진단이 많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또 ‘요즘 갑상샘암이 과잉진단된 까닭에 불필요한 수술을 받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갑상샘암은 소위 순한 암이라 가만히 두어도 되고 증상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검사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초음파 없이 증상이 발생했을 때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았던 과거의 치료율이나 사망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영국은 의료에 관한 한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로 적극적인 진단, 소위 과잉진단을 하지 않는 나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 UK’란 공식기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81∼1985년까지 갑상샘암 5년 생존율은 남자가 59.1%, 여자가 62%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99%를 상회하는 한국의 갑상샘암 5년 생존율과 비교할 때 한참 낮은 결과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자료가 발표된 것이 있다. 서울대에서 30년간 갑상샘암을 관찰한 결과 1990년대 이전, 1990년대, 1999년 이후의 기간으로 나누었을 때 10년 재발률은 각각 36%, 29.5%, 7.6%로 나타났다. 이것은 초음파를 이용한 조기 진단이 이뤄지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치료성적이 급격히 좋아졌음을 보여준다. 2013년 미국암협회에서 발표한 갑상샘암 5년 치료성적자료에서는 1기와 2기는 100% 치료율을 보인 반면, 3기는 93%, 4기는 51%로 감소한다. 이 자료는 초기에 치료를 하면 성적이 우수하지만 늦게 진단되어 병기가 높아지면 고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음파를 이용한 조기진단이 이루어짐으로써 최근의 높은 생존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란 얘기다.

‘증상이 있는 경우에나 검사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까지 든다. 갑상샘암은 대부분 특유의 증상이 없고, 아주 많이 커져서 주변에 있는 기도나 식도, 성대신경을 침범했을 때에야 비로소 증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이미 너무 늦어서 치료가 아주 힘들고 성공률도 매우 낮아지는 위험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급속히 자라고 난치성 갑상샘암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기에 치료를 하면 아무 문제없이 잘 치료될 수 있는 병을 상황을 악화시킨 다음에 치료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모든 암에서 조기 진단과 초기치료가 가장 우수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의료를 받고자 하는 것은 국민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기본 권리에 해당한다. 경제·사회적인 문제로만 접근하여 비용을 따지는 이런 논리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근본으로 생각해야 하는 학문이다. 아무리 통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하더라도 단 한명이라도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은 비윤리적이라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으며 오늘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장항석 | 연세대 의대 교수·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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