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둘러싼 논란으로 또다시 반쪽짜리 기념식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18 관련 단체와 유족들은 1997년 기념일 지정 이후 줄곧 대통령까지 참석해 함께 불러온 이 노래를 2009년부터 갑자기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국가보훈처의 억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보훈처는 대한민국 및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가사의 노래를 어떻게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 기념노래로 지정할 수 있느냐는 보수단체들의 반대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 민주화운동의 진실 담은 노래… 공식 지정은 국민들의 요구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시작되는 5월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에 또다시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왠가?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기념곡으로 공식 지정하겠다던 국회에서의 답변은 ‘빈 말’이 되었다. 5·18의 진실을 인정하기 싫거나 종북몰이에 재미를 느낀 사람들의 반대 의견이 국민여론으로 둔갑되고 있는 탓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도청 진압작전에 희생된 윤상원씨와 노동야학 활동가로서 유명을 달리한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극인 ‘빛의 결혼식’ 중 마지막 합창곡으로 작곡되었다. 1981년 이 노래의 작곡자인 김종률씨는 요즈음 보수세력의 종북공세와 색깔 시비에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비방광고를 게재한 단체를 고소하는 문제를 두고 변호사와 협의 중이라 한다.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기념곡 지정을 왜 요구하는가.

첫째,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야만적인 군사독재의 폭압을 끝내고 자유와 민주의 대동세상이 올 때까지 희생된 영령의 뜻을 받들어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동서고금에 희생과 투쟁 없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는 없었다. 둘째,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그 자체이다. 신군부에게 처참하게 진압된 5·18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15년간의 투쟁 과정에서 전 국민이 애창했던 노래다. 그리하여 5·18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승리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불렸던 ‘라 마르세예즈’를 프랑스 국가로 지정하여 당시의 의미를 현재까지 계승하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셋째, 정부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1983년부터 5·18기념식 등에서 제창되어 왔고,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주관 공식기념식에서도 제창됐다. 2009년부터 5·18 왜곡 공세에 국가보훈처가 물러서서 합창은 가능하되 제창은 불가하다거나, 새 노래 제정을 위한 예산 편성을 하는 방식 등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가 문제를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넷째, 공식기념곡 지정은 국민적 요구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5·18기념곡 지정촉구결의안’이 여야 의원 15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지난 2월 전국시·도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와 지난달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 민의 대변기관인 국회와 기초·광역의회 모두가 기념곡으로 원하는 노래다.

다섯째, 한류 민중가요를 우리가 부정하고 있다. 이 노래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불리고 있다. 홍콩은 ‘사랑의 행진곡’, 대만은 ‘노동투쟁가’, 태국은 ‘솔리대러티’ 등으로 번안하여 애창하고 있다. 티베트,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지의 민주·인권을 요구하는 현장에서도 여전히 불리며 감동을 주고 있다. 여섯째, 국가보훈처 소관 기념일 8개 가운데 5·18민주화운동만 기념곡이 없다. 3·15의거, 4·13임시정부수립일, 4·19혁명기념일, 현충일, 6·25, 10·8재향군인의 날, 11·7순국선열의날은 기념노래가 있다. 반대 의견이 높아 국론분열 우려가 높아서라고 한다. 정부는 이미 국가기념일, 국립묘지, 유공자예우, 가해자 사법처리,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 법적·제도적으로 확립된 5·18민주화운동의 갈등을 관리하고자 하는 것인가, 갈등 조장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것인가, 반대의견을 수집하여 홍보하는 것인가.

독일은 국민 선동죄를 적용해 유대인 학살과 아우슈비츠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람에게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민주주의와 인권분야’의 기록유산으로 5·18기록물의 등재를 받아들이며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냉전종식에도 기여했다”고 평가한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도 역사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음해와 왜곡이 끊이지 않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계속 제창될 것이다.

<송선태 |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묘역 나서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는 집회참가자들(출처 :경향DB)


■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 담아 안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부가 주관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되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노래의 가사에 대한민국 및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노래의 가사를 정리하면 “새날(새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먼저 죽은 동지의 뜻을 받들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자”가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새날’, 즉 새로운 세상의 의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1980년대 이 나라 운동권이 선창하고 대중이 무심코 따라 부를 때의 새날은 운동권에게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이 성공한 세상’이고 대중에게는 ‘민주화된 세상’을 의미했다. 자유민주주의가 높은 수준으로 실현된 현시점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가 말하는 ‘새날’은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과 판이한 세상’을 의미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과 판이한 세상’은 운동권에게는 여전히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이 성공한 세상’이다. 대중에게는 막연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존 체제와 다른 체제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운동권이 생각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한 세상’과 대중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현존 체제와 다른 체제가 지배하는 세상’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기존 국가상황과 다르고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체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란 점에서는 공통된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이 실현될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자는 것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 메시지임이 분명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 내포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는 그 가사를 빌려온 모시(母詩) ‘묏비나리’를 분석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 중의 일부를 떼어온 것이다. ‘묏비나리’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남한 청년 운동가들은 처음부터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운동에 나서서 살인마 구조인 남한 사회구조를 뒤엎어야 한다. ②혁명투쟁을 하다가 죽는 것을 두려워 말고 죽더라도 부활하여 민중의 혁명의지를 격발시켜 분단의 벽과 미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죽어야 한다. ③투쟁하다가 죽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라는 호소가 된다. ④혁명이 일어나면 민중과 힘을 합쳐 가진 자들과 이 세상의 껍질을 깨버리고 해방 세상을 이뤄내야 한다.

‘묏비나리’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③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혁명투쟁을 하다가 먼저 죽은 선배 투사의 영혼이 후배 투사에게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목숨 걸고 투쟁하라”고 촉구하는 대목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묏비나리’가 전달하려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대한민국의 상황과 통일에 대한 백기완의 생각을 들어보면 한층 더 분명해진다. 백기완은 그의 저서 <백기완의 통일 이야기>에서 대한민국을 ‘온갖 나쁜 짓을 해서라도 돈만 거머쥐면 왕이 되는 사회’요, ‘남의 나라 군대가 지배하는 창피하고 더러운 식민지’라고 주장하고, 자본가들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존재로 비난했다. 통일에 관해서는 ‘우리들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는 주한미군이다. 통일을 하려면 주한미군부터 몰아내야 한다’ ‘우리의 통일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기완 같은 사람이 작성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부정적 메시지가 담긴 가사의 노래를 어떻게 정부 주관 기념식의 기념곡으로 지정할 수 있겠는가?

<양동안 |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