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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한국의 총선거가 끝났다. 서울에서도 지방에서도 거리에는 후보자들의 얼굴사진이 붙은 깃발이 나부끼고, 기업광고로 착각하기 쉬운 선거차량이 거리를 누비는 광경이 펼쳐졌다. 후보자와 응원단은 손을 흔들어 환심을 사려 하고 확성기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일본과 흡사한 선거풍경이다.

이 시끌벅적한 선거기간이 지나고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여당의 선전, 야당은 기대 이하의 결과로 마무리됐다. 여당은 정당의 간판을 바꾸고, 당의 얼굴(비상대책위원장)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으로 의석의 격감을 막고, 그럭저럭 과반수를 확보하게 됐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현 정권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성장에서 복지로 중점을 옮기는 것에 의해 거둔 신승(辛勝)이지만 현 정부에 대한 국민여론의 강한 반발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여당은 선전을 한 셈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앞으로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야당은 어떠한가. 의석수를 대폭 늘리며 약진했자만 패배감 같은 분위기에 휩싸여 있음에 틀림없다. 선거를 치르기 전까지는 국회의석 과반수 확보가 현실감을 띠었고, 여야 역전도 필연일 것으로 예상돼 온 만큼 ‘기대이하’의 결과라는 이미지는 불식하기 어렵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안의 씨를 안게 된 것도 확실하다.

이런 총선 결과를 어떻게 분석해야 할 것인가. 전문가나 언론, 정치인 등 각계의 식자들이 이러저러한 각도에서 파고들고 있을 것이다. 다만 눈앞에서 전개되는 상황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면 투표율이 예상한 만큼 높아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아닐까.

 

19대 총선과 정당정치,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공동 학술대회 l 출처:경향DB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의 해외진출과 브랜드 파워도 있고, 일본에서도 이런 한국경제의 파워에 대한 인상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활과 복리면에서 보자면 최근 수년간 가처분소득의 정체와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 실업률 상승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한국사회의 저변을 지탱해온 중간층의 피폐가 심화됐다.

그 결과 중앙과 지방 간 격차와 계층 간 격차, 치열한 경쟁에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와 박탈감 등 다양한 사회적 병리가 드러나고 있다. 요컨대 성장지상주의의 정치·경제구조가 사회적인 복리와 연대를 빠르게 해체하면서 만성적인 패배자 집단과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여파는 심각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한국은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의 우등생처럼 보이지만 대내적으로는 빈곤과 격차, 병리가 끊임없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본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한국에서 선거는 성장보다는 복지로 방향을 튼 정치를 택할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일본에 비해 정보기술(IT)이 앞서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미디어와 네트워크가 확산되고 있는 한국에서 청년층의 정치참여가 좀 더 확산돼 이번 선거에서도 영향을 발휘하면 좋았으련만, 투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오르긴 했어도 대단한 증가율은 아니었다.

확실히 국민의 정치참여 퇴조와 ‘무당파’층의 확대, 투표율 저하는 선진국 민주주의에 공통된 현상이다.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주의라지만 정부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익명의 힘에 좌지우지되고 국민의 뜻이 국정에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점도 선진국의 민주주의 위기로 일컬어진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에 급속히 편입돼 그 영향을 정면에서 받아온 만큼 민주주의의 위기도 심각해지고 있다. 어떤 정부나 대표를 선택한다고 해도 국가가 글로벌 시장경제와 그 혜택을 향유하는 대기업의 동향에 주목하는 만큼 유권자와 국민의 생활 및 복리에는 자원을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체념 비슷한 감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도 야당도, 다양한 운동단체도 체제와 반체제의 격렬한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안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의식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기성 정당정치에서 새로운 비전이나 신선한 발상을 체감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그렇다면 경력쌓기를 위해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민주화시대와 ‘포스트 민주화시대’의 청년층과 학생 간의 의식에는 꽤 큰 단절이 있다. 야당이 그 단절을 메우지 못했고, 젊은이들이 투표소로 발길을 옮기도록 할 새로운 정치 스타일과 비전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에 야당 패배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시대의 정치에는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하듯, 새로운 정치가도 필요하다.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민주화 이후의 한국 정치는 여러 곡절을 거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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