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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논설위원

아마 ‘한 번 주유로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강한 인상을 남긴 광고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카피의 한 구절이다. 살인적인 고유가 시대를 살아가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와닿았던 모양이다. 전기와 휘발유로 가는 차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새길수록 새롭다. 고가라는 한계가 있으나 돈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친환경론자라는 평판까지 덤으로 얻는다. 유행하는 말로 ‘개념 있는’ 측에 들 만하다.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 경영자와 과학기술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한 산물일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 정도라면 국리민복을 외치는 정치, 정치인이라면 이를 능가하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상상력의 사례라면 2002년 대선의 행정수도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행정수도를 입에 올렸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황당해했다. 옆에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기울여온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노 후보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뜻을 헤아렸던 기억이 있다. 노 후보는 충청 민심을 얻었고, 대선에서 이겼다. 수도권 표의 이탈을 감안하면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플러스 효과가 컸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포퓰리즘이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지방자치를 깊이 연구해온 덕에 유권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본다. 행정수도는 ‘관습헌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해괴한 헌재의 결정 때문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반쪽 났으나 현실이 됐다. 행복도시는 노무현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고 노무현대통령 묘역찾은 민주통합당 당선자들 I 출처:경향DB

절대적 좌우 개념의 붕괴, 복잡다단한 국민들의 욕구, 정치적 상상력이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하이브리드 정치’ 시대의 도래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국민들이 원하면 상대 진영의 정책이라도 빌려다 쓰는 정책 차용이 유럽에서는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 국내로 밀려들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복지국가론이 그 중 하나다.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한 복지국가론은 자본주의의 기반인 시장을 훼손한다며 우파 진영의 냉대를 받아왔다. 총선 공약에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새누리당이 당의 정강·정책에 ‘경제 민주화’를 삽입한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 상상력과 하이브리드는 한뿌리다. 상상력이 문제 의식이라면 하이브리드는 대안이다.

사실 ‘안철수 현상’은 하이브리드 정치적 요소가 적지 않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자신을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규정한 바 있다. 보고 듣기에 따라선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의 집합인 ‘좌파 신자유주의’처럼 불편하다. 하지만 안 원장은 MBC 파업 현장을 찾는가 하면,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에도 참여한다. MBC 파업은 정당하고, 탈북자 북송은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존 프레임에 익숙한 정치인이라면 칭송 아닌 비판이 쏟아질 그런 ‘파격’을 꿈꾸지 못한다. 이념이 아니라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유연한 사고, 즉 하이브리드 정치적 판단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할 때 한나라당의 확장성을 경계하면서도 민주당 지지를 천명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반한나라’ 하면 ‘친민주’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에게는 제3의 지대가 있었다.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날수록 그가 잘 보인다.

지금 민주통합당에서는 노선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4·11 총선에서 과도하게 좌클릭하는 바람에 패했으니 중도를 보강하자는 주장과 제대로 좌클릭을 해봤느냐는 반론의 충돌이다. 철이 한참 지난 논쟁이다. 좌클릭이니 우클릭이니 하는 양단의 두 개념은 경계가 모호해지고, ‘민생’을 공통분모로 하이브리드적 변신을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저마다의 고민이 결국 삶의 문제라는 ‘민생’에서 만나는 시대다. 민생이야말로 이종과 혼합이라는 본래 뜻처럼 2개 이상의 상이한 특성을 결합시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하이브리드 정치의 정수다. 새누리당이 보수적 정책에, 민주당이나 진보당이 개혁·진보적 정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 어떤 민생의 가치를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제는 하이브리드 정치가 머리 좋거나 창의력이 풍부한 몇 사람의 머리를 쥐어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대선을 얘기하자면 왜 집권해야 하는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자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구하고, 이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상상력이 생겨난다. 다시 말하자면 열망과 각오, 투지로 상상력을 빚어낼 때 하이브리드 정치도 가능하다. 총선 결과에 참담해해야 할 곳은 민주당이다. 진정 참담해하는 이들은 그들을 지지한 시민들이고, 민주당은 내심 127석에 만족하는 것 같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다시 묻는다. 민주당은 진정 정권을 잡고 싶은가. 무엇을 위해서인가. 국민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집권하면 얻을 수 있는 전리품 때문인가. 민주당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현 야권 주자들의 장점만 모은 후보가 출현한다 해도 희망을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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