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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혁 사회부 기자

지난해 9월30일 열린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된다”고 말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등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던 시점이다.

이 대통령은 유난히 희화나 풍자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잦은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도 그렇다. ‘청와대 직원들은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지녀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겠지만, 세간의 평판과는 확연히 동떨어진 이 대통령의 ‘낯선’ 인식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이 정부 들어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기소된 목록만 대충 훑어봐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운운하기 어렵다. 말과 실질의 거리가 하염없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냉소하고 조롱한다.

 

이명박 정부 권력실세들의 비리 연루 의혹 l 출처:경향DB

이 정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정적을 제거하고 제 사람을 심으려 민간인을 불법사찰하고 재산을 강탈했다. 그 사실을 숨기려고 불법사찰의 증거가 담긴 총리실 컴퓨터를 망가뜨렸다. 이 사실마저 덮으려고 사건 관련자를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청와대가 주도했다. 국무총리실은 행동대 역할을 했다. 여당 의원들은 불법사찰의 피해자를 빨갱이로 분칠했다. 검찰은 깃털만 뽑고 수사를 덮었다. 이 거대한 부조리극에 입법·사법·행정이 총동원됐다. 현 정권의 창업공신 중 한 명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여당 대표에 당선되려고 돈봉투를 돌렸다. 이 대통령 측근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과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에서 뇌물을 받았다. 신재민 전 차관은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는 제일저축은행에서 4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김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는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30억원을 받았다.

이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건설업자로부터 수억원을 받아 썼다. 실세 중 한 명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건설업자로부터 1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도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 중 비리로 기소됐거나 의혹이 제기된 사람만 20명을 넘는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이 정도다. 앞으로 뭐가 얼마나 더 터져나올지 알 수가 없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고 욕을 먹고 있지만, 임기말 수사만 제대로 해도 평가는 바뀐다. 검찰도 임기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제까지 정권과 한배를 탔던 검찰도 등을 돌리는 낌새가 보인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말로가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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