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논단]5년만 생각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하승수 | 변호사

 

“19세 이상 성인남녀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요즘 뉴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구다. 자꾸 이런 문구를 보다 보니, 대통령은 “19세 이상 성인남녀”만 대표하면 되는 것인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19세가 안된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는? 이들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할까? 투표권이 없는 이 존재들은 현재의 선거판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 자체는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런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있다. 최소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이런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겠다.

 우선 눈앞으로 다가온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까지 최대 6.4도의 온도상승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0.8도가 올랐는데도 지금 전 세계가 가뭄, 홍수, 해수면 상승 등의 일을 겪고 있다. 앞으로 1~2도만 올라도 재앙이 올 것이고, 3.5~4.5도가 오르면 생물종의 40~70%가 멸종할 상황이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 세계 9위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시대를 읽지 못한다는 것인가? 

식량위기도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이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홍수, 수확량 감소는 일상화될 것이고, 세계 식량사정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곡물자급률이 26%에 불과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식량주권 확보에 대해 확실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농업을 살리겠다는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탈핵(탈원전)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 흐름을 아예 외면할 수 없으니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책에서 ‘원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원론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탈핵이 될 리가 없다. 국정의 핵심과제로 삼아도 될까 말까 한 것이 탈핵이다. ‘핵마피아’로 불리는 강고한 이해관계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탈핵을 위한 로드맵과 정책수단들을 미리 준비해야 하지만, 지금 그런 의지와 준비는 보이지 않는다.

(경향신문DB)

세계적으로 500개 남짓한 핵발전소가 건설되었는데 그중 3개에서 폭발급 사고가 났다. 어떤 기종의 자동차 500대 중에 3대가 폭발했다면 그런 자동차는 안 타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국가가 망할 수도 있는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헌법상 의무를 갖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이 미적거리고 있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책에 몇 마디 적거나 형식적으로 보도자료에 끼워넣는 것이 아니다. 후보가 직접 발언을 하고 핵심과제로 다루며, 행동으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환경뿐만 아니라 어린이·청소년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아동비만율이 6~11세는 8.8%, 12~18세는 12.7%에 달했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빈곤가정일수록 심하다. 먹거리가 병들고, 방임되는 아동들이 늘면서 어린 시절부터 질병을 달고 산다. 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최고에, 청소년 행복도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런 문제는 단지 학교교육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협동으로’ ‘성장과 물질 중독에서 지속가능한 삶으로’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을 때에만 풀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이것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는 풀기 쉬운 문제만 얘기하는 대통령은 필요하지 않다. 임기가 5년이라고 해서 5년만 생각하는 대통령도 필요하지 않다. 최소한 20년, 30년 앞을 내다보는 비전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갖춘 대통령이 필요하다. 두 후보의 성찰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