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두 마리 물고기

어린 시절 목도한 부모의 교합 장면은
지느러미를 잃은 두 마리 물고기가
진흙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 같았다
방은 어둡고 습했다
두 마리 물고기는 괴로워 보였고
오줌이 마려웠던 나는
조용한 가운데 모아지는 호흡 소리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낯선 움직임이
무언가 애달프단 생각 때문에타
버린 숲처럼, 쓸쓸한 기분이 들어
눈을 감고 오줌을 참았다
어쩌면 그때, 그 슬픈 몸부림을 빌려
동생이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 박연준(1980~ )

 

 


많은 시인들이 태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어떤 시인은 태생의 질문 대신 ‘질투’를 던진다. 내가 태어난 것이 질투라니! 아이는 뜻하지 않게 부모의 교합 장면을 훔쳐보게 되었고, 어둡고 습하고 가난한 방에서 정을 나누고 있는 부모는 아름답기보다는 살려고 몸부림치는 물고기 같다. 그들은 지느러미를 잃었고, 진창에서 뒹굴고 있으며 무엇보다 물고기가 물을 잃었다. 그러니 그들은 지금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곧 죽어버릴 존재들이다. 아이는 또 어떠한가.

죽음을 예비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그렇게 물이 사라진 세계가 나의 태생이라는 정해진 답을 알아차려야 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감당해야만 한다. 부모와 괴로움을 연대하는 형태로 아이는 오줌을 참아야만 한다. 아니 오줌보다 또 무언가를 참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부모의 욕망은 동생이라는 또 다른 결과의 가능성으로 귀결되겠지만 아이는 그들처럼 욕망을 배설할 수도 없는 어떤 곤욕에 시달릴 것이다.

범박하게 말하면, 박연준의 시는 이곳에서 솟아나는 질투로 시작한다. 아버지 세우기와 죽이기를 반복하고 그런 무능 곁에서 떠나기와 남아 있기를 반복했던 어미를 부정하는 ‘안티고네의 질투’가 박연준을 시인이게 하는 아픈 심연이다. “절망한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혼자 사진을 찍었다”(‘환절기’)고 고백하듯이.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