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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병 이야기
그날 우리는 짐을 싸면서도 용병인 줄 몰랐다. 끗발이나 빽도 없는, 대가리 싹뚝 민 개망초 보병들이다. 야간 군용 트럭으로 잠입한 오음리 특수훈련장, 이른 기상나팔에 물구나무 선 참나무, 소나무, 굴참나무. 아침 점호에 같이 고향을 본 후 힘차게 몇 개의 산을 넘었다. 이빨까지 덜덜거리는 상반신 겨울, 주는 대로 먹고, 찌르고, 던지고, 복종하는 훈련병. 정곡을 찌르는 기합에, 겨울 새떼들은 숨죽이며 날아올랐다. 하루 일당 1달러 80센트에 펄럭이는 성조기, 우리는 조국의 이름으로 낮은 포복을 하였다.*
오음리의 겨울은 이제 누구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기든 말든 죽은 시인도 죽은 척할 뿐이다.
*통킹만 사건(1964년)을 빌미로 미국의 베트남전이 시작됐다. 2005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밝혔다.
- 김종철(1947~ )
△ 1965년 10월에는 해군 청룡부대가, 11월에는 육군 맹호부대가 대통령과 국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베트남을
일러스트 : 김상민
향해 떠났다. 1973년까지 매년 평균 4만8000여명이 주둔했으며 5000여명의 전사자와 2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껏 10만여명이 고엽제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단 한 줄 시를 위해/ 참전한다고 호기있게 쓴 편지”(‘빨간 팬티’)가 친구 손에 닿기도 전에, “GNP 103달러밖에 안 된 피죽도 먹기 힘들었던 그 당시, 미국과는 참전 수당으로 1인당 월 200달러 받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정부는 월 30∼40달러만 지급하고 국가경제 부흥 명목으로 차압”(‘슬픈 고엽제 노래’)해 ‘하루 일당 1달러 80센트’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 파월장병들. “하늘에서 무심결 뿌려지는 물보라에 입 벌려 맛본 고엽제. 에디트 피아트의 ‘고엽’에 기도했던 우리는 슬픈 용병”(‘나라가 임하오시며’)이었던 그들에게 베트남전은 “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겼”던 참극이었다. 돈의 전쟁이었다. 파월장병 훈련장이 있던 ‘오음리’(강원 화천군)는 잊고 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라디오에서는 김추자가 경쾌한 목소리로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의 금의환향을 노래했으나 우리 동네에는 ‘월남’에서 돌아온 상이군인이나 생활불능자들이 더 많았던가?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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