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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 이상(1910~1937)


△ 뉴턴은 사과가 떨어진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단순히 사과가 땅으로 떨어졌을 뿐인데, 이 사건 때문에 근대 과학이 출발했고 중세 봉건 질서와 사상이 무너졌다. 시인의 말대로 지구는 정말 부서질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저 사과 한 알 때문에 문명은 더욱 더 난폭하게 발전했고 서로가 서로를 침략했으며, 20세기 초 우리는 식민지였다. 어떠한 정신도 새롭게 싹 틔우지 못할 것 같은 현실. 말 그대로 당대 사람들에게는 매순간이 “최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李箱)은 억압 속을 건너며 상상해야만 했다. 미래로, 먼 미래로 자신을 견인해 나가면서 새로운 상상력이 암흑시대의 한 아이를 키워냈다. 그의 시가 대체 무슨 뜻이냐고? 어떤 필요성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음을 받고 또 그 물음들을 묵묵히 거절하면서, 시인은 당대를 견뎌냈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가 된 우리에게 여전히 그는 우리의 미래에 가 닿아 있다. 상상력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견디게 하는가? 


시인은 다시 말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우리는 그의 시에서 절망을 읽는가. 기교를 읽는가. 오늘 당신에게 ‘비범한 사과 한 알’이 아프게도 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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