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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 동아대 교수·문화연구
아버지 박정희의 ‘국가 산업화’ 이미지와 어머니 육영수의 ‘한복 입은 온화한 여성’ 이미지가 뒤섞여 탄생한 정치인 박근혜는 어려서부터 유신의 논리와 작동방식을 학습 받았다. 결국 박근혜는 박정희의 환생이자 유신독재 18년의 아바타다. 그래서 그는 박정희의 ‘산업화’를 내세우며 아버지의 독재와 폭력과 살인을 합리화하고 5·16쿠데타마저 ‘최선의 선택’이라고 미화한다.
이쯤 되면 ‘학습’ 정도가 아니라 ‘세뇌’ 수준인데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박정희의 산업화’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사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한다. 쿠데타와 유신독재 덕에 지금 우리가 먹고산다? 희한한 논리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업훈련학교를 시찰하는 모습 (경향신문DB)
그렇다면 산업화를 과연 박정희가 혼자 독점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독재자 박정희가 ‘개발독재’를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가 헐벗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우리는 박정희가 없었어도 가슴 뿌듯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특히 박정희 덕에 우리가 먹고살 수 있다는 주장은 무엇보다도 독재의 억압과 감시 속에서도 가족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묵묵하게 일했던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한 번 따져보자. 박정희식의 무자비한 군사독재가 경제성장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많은 신생국가들에 독재정권이 들어섰고 또 그 대부분이 산업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독재개발’이 경제성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 아시아에서 ‘잘나가던’ 나라는 미국과 소련에 밀착했던 필리핀과 북한이었지만 곧 고꾸라졌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는 빈곤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남미도 다를 바 없었으며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최근 신흥경제국을 지칭하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는 독재국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을까.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는 1991년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을 분석한 저서 <네 마리의 작은 용(The Four Little Dragons)>에서 그 원인을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설명한다.
외적 요인으로는 냉전과 미국의 기술이전, 국제무역의 확산, 대량소비의 증가, 정보혁명, 다국적기업의 등장 등을 꼽는다. 네 마리의 용이 공통적으로 보유한 내적 요인은 유교적 전통, 미국의 원조, 구체제의 붕괴, 경제성장에 대한 절박함, 풍부한 노동력, 일본의 성공 사례 등으로 정리했다.
그는 재미있게도 한국 경제성장의 첫째 요인으로 북한의 위협을 꼽았다. 다른 나라보다 그래서 사회적 통합이 용이했다는 것이다. 또 천연자원은 없지만 대만의 두 배에 이르는 인구, 군대를 통해 배출된 세계 최고 수준의 훈육된 인력, 국가에 대한 인식, 엄청난 교육열 등이 경제성장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에 물론 박정희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가 군사쿠데타로 18년간 독재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이 박정희 때문이었다는 내용은 없다. 국가가 거꾸러지는 경우는 잘못된 지도자 한 명 때문인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국가가 흥하는 것은 근면한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재벌도 언급했다. 권력과 거래하며 성장한 한국의 재벌은 일본의 대기업에 비해서도 국가 경제의 집중도가 심하고 오너 가족이 전횡하며 임원과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가 심할 뿐 아니라 불공정과 부패의 혐의가 짙다고 했다.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재벌은 국가생산의 이윤을 독식하며 골목 민생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 재벌, 누가 키워줬나. 박정희 아니던가. 바로 그 때문에 한국은 지금 다른 세 마리의 용보다 임금격차와 사회양극화가 극심할 뿐 아니라 외부 충격에 예민한 불안정한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박정희 때문에 산업화가 됐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아둔한 주장이다. 박근혜는 산업화 가지고 독재를 합리화하지 마라. 산업화는 박정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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