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대선 후보들이 정치쇄신안을 쏟아낸다. 그런데 아무 감흥이 없다. 정치학자의 관점에선 새롭지도 않고, 국민의 관점에선 ‘저게 뭔 말이래’ 하는 것 같다. 정치쇄신을 오로지 대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박근혜 후보는 그저 의제선점을 위해 발빠른 행보만 했던 것 같고, 문재인 후보는 단일화를 위한 유인책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누구도 싫다 말할 수 없는 추상적 원칙과 개념어만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가슴에 팍 와닿거나 뒤통수를 탁 치는 것 같은 ‘맛깔나는’ 방책을 선보이고 있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 것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 있기는 하다. 바로 ‘인간’이다. 이타적이어야 한다면서도 인간은 실제로 이기적 존재라고 믿는 인간, 깨끗한 정치를 원한다고 하면서 더러워도 유능한 것을 더욱 좋아하기도 하는 인간, 제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빼내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타인을 먼저 탓하는데 더 익숙한 인간, 현상타파를 외치면서 현상유지를 더 편하게 여기는 인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의외성을 통해 진심을 깨닫고 인정하는 인간’ 말이다.


 

발언하는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 (출처: 경향DB)




<자유론>으로 세계 지성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존 스튜어트 밀이 1865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였다. 밀은 당시 전대미문의 출사표를 던졌다. “나는 의원이 되고 싶지 않다” “출마하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을 것이다” “당선된다 해도 내 시간과 정열을 선거구를 위해 바칠 수는 없다. 의원은 선거구에서 출마하지만 전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그는 다수의 유권자가 거부했던 여성참정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실제로 그는 당선된 후인 1866년 영국 의회에서 최초로 여성참정권 보장을 주창하였다). 


하지만 그의 당선을 도운 것은 그러한 공언이 아니었다. 그는 ‘의회개혁에 대하여’라는 팸플릿에서 “영국의 노동자는 외국의 노동자에 비해 진실한 편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합니다”라고 썼다. 이를 경쟁후보가 악용하기 위해 노동자가 대부분인 밀의 유세장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 써놓았다. 이를 본 노동자들이 분노하여 “그 후보자가 어떤 놈이냐”고 따져 묻고, 밀에게 죽은 고양이까지 내던지며 “이거나 먹어라” 하고 야유하였다. 하지만 밀은 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이 썼노라고 말했다.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부인할 줄 알았던 노동자들이 의아해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박수가 터져나왔고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이어서 “이렇게 정직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면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 노동자는 참된 친구가 필요합니다. 위선자가 아닌 진실한 지도자가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환호소리가 뒤를 이었다. 노동자들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의외의 정직함’이 밀에게 선거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나는 ‘쇄신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국민의 직접적 관여가 없는 한 정치쇄신은 어렵다”고 솔직히 시인하는 후보를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쇄신을 향한 진심을 인정받아 “국민이 직접 자신과 함께 정치쇄신을 위해 실천하자”고 제안하고, 힘이 없기에 가슴속 깊이 쌓인 한을 풀어주려는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지금으로선 그것이 정치쇄신의 ‘진짜 방안’이 아닐까 싶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행동은 없고 ‘그게 그거 같은’ 말만 앞세운 채, 마치 자신만이 정치쇄신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실은 몸을 사리고 있는 듯해 하는 말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