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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소탐대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이 말부터 떠오른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비타협적 태도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전제로 하는 것이 정치다. 그렇다면 정치는 타협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원안을 고수하는 건 원칙과 소신이 아니라 타협에 대한 거부, 정치에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다.
주지하듯이 대통령제는 대통령(행정부)과 의회(입법부)가 모두 국민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이중적 정통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양 기관 간의 경쟁과 견제는 불가피하다. 역대 대통령은 이 경쟁과 견제 문제를 대개 다수 여당을 거수기로 만들어 의회를 무력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지금 박 대통령도 이런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킹 마인드’ 때문에 여당이 길들여지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 리더십을 보인다면 새누리당이 야당과 타협할 공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여야 관계가 경색돼 양극화된 대결정치를 펼치게 되면 대통령의 운신 폭이 좁아지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었던 선거기반을 넘어서는 정치기반을 가져야 자신이 약속했던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약속한 박 대통령으로선 강경보수의 반대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인데, 선거 때의 기반에만 의존하게 되면 그들의 저항을 뚫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여야 맞대결 구도를 만드는 건 자신에게도 결코 유리할 게 없는 소탐대실이다.
야당의 전략도 그리 유효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조직법 개정이든 4대강이나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든 과연 이런 아젠다들이 민주당이 집중해야 할 차별화의 지점일까. 지난 대선에서도 새누리당과의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차별성을 보이는 데 실패해서 졌다. 민주당이 혁신해야 할 과제는 많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새누리당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복지공약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률 문제는 공약에서 많이 후퇴했다. 또 취임사에서 두 차례 언급했지만 대체로 그 의지가 무뎌졌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경제민주화 이슈도 있다. 민주당이 집중해야 할 과제는 바로 이런 의제들이다. 이런 문제를 놓고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고, 자신들의 대안을 온전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경제적 차별화가 가능해진다.
지금 민주당에서 위기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고, 어수선한 여권의 분위기로 인해 생긴 반사이익 때문인지 느긋해 보인다. 백보 양보해서 박 대통령이 하는 모습을 보면 민주당이 안도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정치적 이슈에 의한 반사이익에 기대서는 수권능력을 키울 수도, 좋은 리더십을 창출할 수도 없다. 보통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삶의 문제를 의제화하고, 그것에서 차별화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민주당의 진정한 혁신이다. 제도 개혁은 그 다음이다.
(경향신문DB)
정부조직 개편에 있어 민주당이 펴는 논리는 틀리지 않다.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옳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문제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집중해야 할 분야나 이슈가 소홀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이 또한 소탐대실이다.
거듭 말하지만, 박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복지와 경제민주화에서의 후퇴다. 정부조직 개편이 아니다. 민주당은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민생이슈에 집중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프레임을 구축해야 민주당이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를 확장하고, 안정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정부조직 개편에서 통 크게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소탐대실의 고사에서 크게 잃게(大失) 되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패망이라는 사실을 민주당이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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