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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엊그제 이사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날로, 사퇴시점을 놓고 고심한 것 같다. 그는 지난해 10월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MBC 지분 30%를 매각하는 문제를 MBC 경영진과 논의한 사실이 공개된 이래 야당과 시민단체의 사퇴압력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사퇴를 미뤄온 것이 그가 밝힌 것처럼 “본의 아니게 정치권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면 알려진 대로 박 대통령 부녀에 대한 대단한 충성심의 발로로 여겨진다.
어찌되었든 정수장학회와 박 대통령을 잇는 상징적 인물이 물러남으로써 정수장학회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정수장학회 문제의 핵심은 ‘장물’로 존재해온 정수장학회 보유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정수장학회가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설립한 장물이라는 정황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2005년 7월 국정원 과거사진실위는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강제로 헌납받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7년 5월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2012년 2월 유족들이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시효를 이유로 반환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강압에 의한 헌납’임을 인정했다.
(경향신문DB)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수장학회가 정치적 장물이란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인 2007년 7월 대선후보검증청문회에서 정수장학회가 강제헌납됐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정수장학회 문제는 저도 관계가 없다.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공감하기 힘든 태도다. 그는 1995년부터 10년 동안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내며 고액의 보수를 받았다. 물러난 최 이사장이 박정희 정권 때부터 얼마나 ‘충신’이었는지는 세상이 아는 사실이다.
이제 정수장학회 문제는 정치적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 유족들의 반환소송이 법원에 계류 중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출발부터 초법적, 정치적인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바, ‘한강의 기적’은 부친이 남긴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그러나 강제헌납과 같은 ‘부(負)의 유산’도 분명히 존재한다. 박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애써 외면해버린다면 국민이 새 정치에 거는 희망도 크게 퇴색할 것이다. 정수장학회 장물 논란을 매듭지을 중대 계기가 마련됐다. 그것을 할 사람은 박 대통령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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