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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검사’로 불리는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2002년 취임사에서 “진정한 무사는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은 쬐지 않는다”고 했다. “선비는 목을 치더라도 욕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조직을 위해 벚꽃처럼 지겠다” 등 고위 검사들의 퇴임의 변에는 늘 ‘절개’가 묻어 있다. ‘스폰서 검사’ 등 그렇지 않은 인사들도 있지만, 그들은 시작부터 검사라는 자부심이 크다. ‘검사 동일체 원칙’도 엄존한다. 당초 취지는 일선 검사의 기소 독점권이 잘못 행사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다. 그런데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상하복종의 조직문화의 기제로도 작동한다. 이의제기권이 신설되고 소속 상급자로 지휘·감독의 범위가 제한되긴 했지만 검사는 여전히 이 원칙에 충실하다. ‘검사는 한 몸이다’라는 의식이 지배하면서 단단한 결속력이 생긴다. 그사이 검사의 독립은 외면되기 일쑤고, 조직의 특권의식은 강화된다. 

이런 특권의식이 권력과의 야합을 통해 부당한 수사로 이어진 사례는 일일이 셀 수조차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저서에서 “참여정부 당시 검찰개혁의 실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통탄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은 권한의 분산 없이는 검찰의 민주화는 ‘먼 길’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를 강제할 장치로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방안을 내놓은 이유다. 이를 위한 두 법안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통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법안이 시행된다고 검찰이 특권을 내려놓을지는 의문이다.

2005년 당시 천정배 법무장관은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그러자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사퇴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게 사퇴의 변이었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에 적시된 법적 권한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반발했다. 제도적 통제조차 거부한 것이다. 지금의 검찰은 2005년의 검찰과 다를까. 서지현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부장검사는 최근 “검찰의 배당, 인사, 징계 등 모든 시스템은 ‘절대복종 아니면 죽음’을 의미한다. 조직 내에서 죽을 뿐 아니라, 나와도 변호사는 물론 정상생활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검찰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검찰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25일 충남 천안시 대전지검 천안지청에서 평검사들과 대화를 나눈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윤석열 검찰총장이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장관 가족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사태 초기 국민 대다수는 ‘부모 찬스’로 함축된 특권층의 불공정에 좌절했다. 특히 청년들은 자녀 입시 과정에서 드러난 ‘불평등’에 절망했다. 분노는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국민 분열로 심화됐다. 갈라진 국론은 국정동력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경제난 해소 등 할 일 많은 정부와 국회가 ‘조국 수사’로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조국이 살면 검찰개혁이 이뤄질 것이고, 윤석열이 살면 살아 있는 권력을 쳐낸 ‘칼’로 반칙과 부정·불법이 없는 세상을 열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조국 장관이 혐의를 벗는다고 검찰개혁이 물 흐르듯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조 장관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의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검찰이라면 조직적 저항도 예상된다. 한 평검사는 모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 “평검사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낼 경우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조직적 검란으로 해석되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발악으로 비쳐 수사에 부담을 줄까 우려된다”는 글을 올렸다. 검찰개혁은 사실상 조국 수사 후 ‘사활을 걸어야 할 싸움’이 될 것이다.  

검찰의 의도대로 수사가 끝날 경우 살아 있는 권력을 무릎 꿇린 ‘칼’은 더 무섭게 춤출 것이다. 이는 검찰개혁의 본질이 아니라 특권의 확장이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특수부 화력을 집중하여 파헤치는 모습은 역시 검찰공화국이다  싶다”고 했다. 무리한 기소와 70여곳에 달하는 압수수색, 여론을 흔들어보려는 피의사실공표 등은 과도하다. 권력화된 검찰수사의 전형이다. 이런 모습은 도리어 검찰개혁을 앞당길 명분도 제공한다. 법안의 국회통과 동력이 커지는 것이다. 검찰권력 비대화를 우려한 견제장치가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를 조국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한다면 지금 겪고 있는 진통은 의미가 없다. 검찰개혁과 사회적 공정성 확립이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국 대 검찰, 정부·여당 대 야당, 조국 지지 대 반대로 형성된 현재의 사회적 구도는 안타깝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없다면 ‘조국 이후’에도 또 다른 ‘조국 사태’를 반복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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