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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PLZ 프로젝트

opinionX 2019. 9. 25. 10:39

낮 시간 한반도의 허리띠는 녹색이다. 밤에 우주정거장에서 보면 얇디얇은 불빛 선으로 바뀐다. 강원 고성에서 한강하구까지 동서로 248㎞, 남북 철조망 사이 4㎞에 펼쳐지는 비무장지대(DMZ)의 두 색깔이다. 70년 가까이 사람 손길이 끊긴 3억평(907㎢)의 긴 띠는 5929종의 생물과 멸종위기 동·식물 101종이 사는 ‘생명의 땅’이다. “바로 앞에서 마주친 산양이 도망가지 않고 눈싸움을 해요.”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DMZ 탐사 중에 만난 동물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수리·두루미·황쏘가리가 모여 살고, 호랑이만 없는 원시의 세계다.

남북이 유해를 발굴하며 감시초소(GP)·지뢰를 없애기 시작한 DMZ는 가다서다 ‘평화의 땅’으로도 변신 중이다. 한국전쟁 때 동·서·중부 전선에는 북 탱크가 내려온 남침로 3개가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군부 설득에 땀 흘렸다고 한 개성공단·금강산 가는 길은 다시 뚫렸고,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는 경원선 길만 닫혀 있다. 군사 요충로 2개는 평화의 길로 바뀐 셈이다. 총알 자국 선명한 북한 노동당사와 먼 옛날 태봉국의 궁예도성이 있는 철원은 ‘세계평화공원’을 만들려는 남북경협 DMZ 축의 중심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제2차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의 2020년 서울 개최 계획을 밝혔다. 뉴욕 _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DMZ가 24일 유엔총회 무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총회 연설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며 남북에 주재 중인 유엔기구와 평화·생태·문화기구들을 DMZ 안으로 옮기자고 제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인류의 공동유산이 된 DMZ의 유네스코 등재도 남북이 함께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현된다면, DMZ가 마지막 분단국의 군사적 긴장을 풀고 북이 미국에 요구하는 체제안전 보장의 지렛대도 될 수 있다. 한국은 26개의 유엔 기구에 가입했고, 평양사무소를 둔 세계보건기구(WHO)나 세계식량계획(WFP)처럼 북한도 16개 유엔기구에 적을 두고 있다.  

지난 20일 춘천에선 DMZ에 새 이름을 명명하자는 국내외 학자들의 포럼도 열렸다. 평화와 생명이 공존하는 ‘PLZ(Peace & Life Zone)’로 만들자는 프로젝트가 움튼 것이다. 세계적 온대서식지인 DMZ는 무한대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다. 미래의 땅엔 새 이름(PLZ)이 안성맞춤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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