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사건’ 공소장이 최근 공개됐다. 법무부는 앞서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잘못된 관행”이라고 했다. 국민 알권리 침해 지적에도 추미애 법무장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리 사법체계는 공판중심주의·공소장일본주의를 채택한다. 재판부가 편견·선입관 없는 상태에서 검사와 피고·변호인이 제시하는 증거와 법리에 따라 유무죄를 다툴 때만 공정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공소장이 재판 전에 공개되면 ‘여론재판’이 시작된다. 판사가 특정 주의·주장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이 재판 시작과 함께 공개되면 ‘미리 알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하는 일도 대부분 해소될수 있다.

공소장에는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사실이 적시됐다. 청와대 전직 비서진의 개입으로 2018년 지방선거 자유한국당 후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이뤄졌고 관련 언론보도가 김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결국 낙선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비서진이 송철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위해 경찰 수사를 지시·독려하고, 선거기획에 참여하고, 당내 경쟁 후보의 경선 포기를 종용한 것이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반헌법적 행위다. 

공소장에는 ‘대통령’이 수십차례 등장한다. 청와대 전직 비서진에 대한 공소사실을 담기 위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문에서 검찰은 “대통령의 (중략)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했다. 피고 측 변호인들이 ‘정치선언문’이라고 비난한 배경이다. 그럴 만한 것이 ‘선거에서 공무원은 엄정한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다’는 한 줄이면 될 것을 557자를 할애하면서 대통령의 중립의무까지 강조했다. 공소장 곳곳에 송철호 울산시장과의 친분을 드러내고 대통령 이름 석자를 적시하기도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통령에 대한 충심’을 강조한 바 있다. “측근 비리는 수사로 도려내는 것이 대통령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공소장에서 대통령을 거론했다. ‘윤석열의 충심’은 믿기 어렵게 됐다.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대통령은 여론재판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여론의 법정은 유죄추정 원칙이 지배한다. 검찰의 공소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며,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고 몰아세운다. 보수언론, 한국당 등은 물론 교수·법조인 단체, 진보성향 학자·변호사·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당은 “범죄집단 총책임자” “수사에 응하지 않으면 혐의를 시인하는 것”이라 윽박지르고,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공소장은 검찰이 재판해줄 것을 법원에 요구하면서 제출하는 서류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담겨 있지만 유·무죄는 재판에서 결정된다. 국가권력의 감시자인 언론이 이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다. 다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반론권은 보장해야 한다. 공소장이 ‘반쪽짜리 사실’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피해는 직접적이고 크다. 과거 ‘포르말린 통조림사건’의 경우 검찰 공소장을 토대로 작성한 언론보도 여파로 관련 제조업체들이 무더기로 도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재판에서 검찰 수사의 잘못이 드러나 무죄 판결이 났다. 검찰의 공소장이 ‘미완성 진실’이었던 탓이다. 이런 잘못된 검찰 수사 등으로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1심 형사법원 합의부 무죄 비율은 8.9%였다.  

게다가 공소장 어디에도 대통령에 대한 범죄 혐의는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범죄 피의자’로 몰고가는 것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독배를 들게 했던 아테네의 시인 멜레투스 등의 선동정치나 다름없다. 또한 변호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 중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재판에서 다툴 내용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민 알권리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충돌, 검찰의 ‘절차적 정의’에 따른 수사결론을 ‘결과적 정의’로 보려는 태도, 그리고 이를 진실인 양 보도해온 언론의 보도행태 등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상대가 어디에 살든, 상대를 얼마나 잘 알든, 모든 사람의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열린 공론장에서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경구가 아닐까.

<김종훈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