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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2월12일 (출처:경향신문DB)

신종 코로나에 대한 보수 야당의 행보는 미국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를 연상케 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3일 “나라가 온통 정신이 없는데 대통령이 공수처에 한눈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환자 한두 명 나왔다고 장관과 총리가 나설 순 없다”는 그의 국회 답변과 정면 배치된다. 과거에는 장관·총리조차 나설 일이 아니라더니 이제 와서는 대통령까지 안 나선다고 타박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 2일 “신종 코로나 정보를 투명 공개하라”(한국당 대책TF 회의)고 요구했다.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감기 좀 유행한다고 정부가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2015년 국회 답변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황 대표가 엇갈린 발언을 한 5년 사이 감염병의 방역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거라면 메르스 때 총리이자 방역총책임자이던 그가 지금 제1야당 대표라는 사실뿐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언행이 달라지는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감염병 대처는 매우 엄중한 문제다.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다.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한 치의 시행착오도 용납될 수 없다. 건전한 정부 비판이 야당의 책무이지만 감염병에 관한 한 엄격한 제한이 필요한 이유다. 비판하더라도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면 안된다. ‘반려견 작고’ 같은 단순 말실수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 대표의 ‘정부의 마스크 300만장 중국 지원’ 발언 역시 무책임하다. 마스크 지원은 중국 유학생단체가 했고 정부는 전세기편에 전달만 했는데도, 정부가 지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마스크 수급불안 심리’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방역망에 구멍이 뚫리면 시민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신종 감염병은 최근 4개 정권에서 5~6년 주기로 연이어 대유행했다. 그런데 관리 성과는 정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사망자만 해도 사스(노무현 정부) 0명, 신종플루(이명박 정부) 263명, 메르스(박근혜 정부) 38명, 신종 코로나 10일 현재 0명으로 차이가 크다. 황 대표가 중도에 총괄책임을 맡은 메르스 사태는 초동대처 실패, 격리대상의 범위 오류, 컨트롤타워 부재 등으로 인한 방역 실패의 대표 사례다. 예컨대 당시 정부는 사태 초기 환자와 환자 진료 병원 정보를 철저히 은폐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병원을 방문하고 환자와 접촉했다가 속절없이 감염되는 이른바 ‘슈퍼전파’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가 바이러스로부터 시민을 보호한 게 아니라 방역망으로부터 바이러스를 보호한 셈이다.

사스 때 ‘모범예방국’으로 불린 한국은 메르스 때는 유독 메르스에 취약한 국가라는 뜻의 ‘코르스’(KORS)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지난해 2월 한국당 대표 출마 당시 자신이 “단기간에 메르스 사태를 극복했다”고 자랑했다. 총리 취임 이후에도 시민 15명이 메르스로 숨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자랑병’에 김무성 한국당 의원도 걸린 것 같다. “가장 대응을 잘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신종플루 시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로부터 <신종플루 대유행 대비계획>을 넘겨받고도 초기 대응 실패로 수백명의 희생자를 낸 ‘방역실패 정권’ 당시 여당 대표로서 할 말이 아니다. 취약계층 지원 마스크 예산을 삭감한 것은 한국당인데, 되레 민주당이 삭감했다고 왜곡 주장한 민경욱 의원은 또 어떤가. 민 의원은 우한 교민의 국내 송환 신중론을 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 아닌가. 이는 야당 국회의원이라고 다를 바 없다.

모두들 집단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싶다. 의학적으로 기억상실증은 뇌가 기억을 인출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른다. 하지만 야당 인사들은 기억이 아니라 상식과 도의를 인출하지 못하는 것 같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물불 안 가리고 정치 공세에 나선 것이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메르스 비극’의 책임자로서 황 대표는 현 정부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감염병 재난은 인재다. 철저한 사전 대비와 신속한 초기 대응,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얼마든지 시민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방역에 실패해 대규모 희생자를 발생케 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고위 인사들은 감염병에 있어서만큼은 정부 비판보다 성찰부터 하는 게 맞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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