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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이 반지하방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집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반지하방에 머무는 서민들이 적지 않다.

영화 <기생충>에서 살인이 난무하는 가든 파티의 근본적 원인은 선을 넘어오는 ‘기택(송강호)의 냄새’였다.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 ‘봉테일’(봉준호+디테일) 감독답게 세트장에는 냄새까지 구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빈부(貧富)의 상징은 반지하와 저택이란 시각적 대비 없이는 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수많이 계단이 비친다. 반지하 셋집에 쇄도하는 빗물의 계단, 대문에서 잔디밭을 지나 현관과 거실 및 2층 침실로 이어지는 화려한 계단까지. 그 계단들을 하나하나 오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지하에 숨은 기택에게 아들 기우(최우식)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저는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돈을 벌겠습니다. 그리고 이 집을 사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계단을 올라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현실 자본주의에서는 결코 작동할 수 없다. 그래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역설이 명대사로 남았을 것이다.

‘사는 곳이 어디인가’는 계급과 계층을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 된다. 대다수는 반지하와 대저택 중간 어디에 살고 있겠지만, 저마다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뛰는 집값에 낙담하는 사람,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에 집을 샀어야 한다는 사람, 그리고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와, 그걸 놓고 찬성하고 반대하는 전문가와 건설사와 언론들. 저마다 집을 향한 욕망과 해법 속에 난장을 이룬다. 그러는 사이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는 저소득층, 청년층의 하소연은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얘기로 치부되고 있다.


1년 전 칼럼서 ‘집값 안정’ 당부

12·16 대책에 주춤, 불안 여전

“햇살 든 지하를 지상으로 여겨”

봉준호 감독 ‘반지하’ 의미처럼

총선 앞둔 각종 대책·공약들이

반지하 잠깐 비춘 햇살 안돼야


꼭 1년 전 이 지면에 ‘문재인 정부의 극한직업’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마약 밀매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했다가 유명 맛집이 되면서 한바탕 소동을 치르는 영화 <극한직업>의 내용에 빗대 한눈팔지 말고 집값을 안정시킬 것을 당부했다. 2018년 9·13 대책의 약발이 먹히고 있지만 집값 하락 추세를 체감하기에는 미미하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으며 끝까지 집값 안정 의지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부동산 안정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잠깐 숨을 고르던 집값은 이후 고삐 풀린 채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올랐다. ‘집값 상승→정부 대책→숨고르기→집값 상승→정부 대책’이라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평당 1억원’ 시대가 됐다. “수도권 집값 급등으로 국민을 분노와 우울에 빠지게 만든 고약한 한 해”(박복영 경희대 교수)였다.

지금 양상도 그때와 비슷하다. 지난해 12·16 부동산대책 이후 상승세가 둔화되기는 했지만 서울 집값이 완전히 잡혔다고 할 수 없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서울 집값은 수원·용인·성남 등지로 옮겨붙었고 전셋값도 불안해졌다.  사상 최저금리에 시중에 돈이 넘치고 있지만 경기 회복을 견인하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그럴수록 부동산을 향한 욕구는 더 강렬해질 것이다.

부동산은 이제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란 당위적 가치가 지배하지 못한다. 이미 있는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 부동산을 둘러싼 계급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사퇴하고, 이어진 개각에서 잠실, 분당, 세종의 ‘똘똘한 3채’를 가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의 유무가 투기성과 청렴성의 바로미터가 된 셈이다.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라는 공간에서 오는 미묘함이 있다. 더 힘들어지면 완전히 지하로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는 동시에,  햇살이 드는 순간에는 지하이지만 지상으로 믿고 싶어진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잠깐 햇살이 비친 반지하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닐까. 반지하에서 잔디가 깔린 마당으로 계단들이 튼튼하고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단지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 출마자에게 ‘1주택 이외 전부 매각’이라는 서약을 받았다. 정부도 선거를 앞두고 최대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고자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의 성찬이나 일시적 대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선거 대책과 공약들이 반지하를 잠시 비추는 햇살이 되게 해선 안된다.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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