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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논설위원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던 날이다. 부산의 한 기업 방문을 마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회사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동행한 기자들이 “몇 가지 질문을…”하면서 다가섰으나 박 의원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 원장 이야기 들으셨죠” “사실상 대선 출마라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자들이 따라붙었지만 그는 서둘러 승용차에 올랐다. 기자들은 “기자도 국민인데…”라며 멋쩍음을 달랬다. 이 말은 박 의원이 토론회에 나가 ‘불통’이라는 지적을 받자 “소통이 안되면 총선에서 이겼겠느냐. 국민들과 소통은 잘되고 있다”고 한 해명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현장에 다녀온 기자의 후일담에 비친 박 의원의 모습이다.
박 의원이 예민한 현안을 두고 즉각적 언급을 피하는 일은 흔하다. 며칠씩 두문불출하면서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웃고 말거나 원론 한마디로 대신하는 일도 간혹 있다. 생각이 정리되면 입장을 밝힌다. 그 시점을 잘 아는 인사가 진짜 측근이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에도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이틀 뒤에야 본회의장 앞에서 정 의원의 결자해지론을 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아직 책을 보지 못했다’거나 ‘생각을 정리한 뒤 말하겠다’ 정도의 언급은 할 수 있었을 터이나 답은 고사하고 굳은 표정으로 지나쳤다. “기자도 국민인데…”라는 식으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언론은 지도자, 특히 박 의원에게 관대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 후보 ㅣ 출처:경향DB
역시 불통이 문제다. 박 의원이 4·11 총선 결과를 국민과의 소통 근거로 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표를 먹고산다. 참패가 예상된 총선을 되돌려 놓은 것은 분명 그의 역량에 의존한 바다. 그러나 선거는 상대가 있다. 승패에 대한 책임은 절반이 자신에게 있고, 나머지 절반은 상대에게 있다. 누구의 승리냐도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당으로선 패배할 게임을 이겼다고 볼 수 있고, 170여 거대 여당을 150석으로 줄여놨다고 할 수도 있다. 여당 승리라기보다 야당 패배라는 시각도 상존한다. 박 의원의 셈법이라면 46% 기권층과 상대적 선택이라는 중간지대는 설 자리가 없다. 한때 경선캠프 사무실 출입을 보안장치로 통제하는 바람에 ‘캠프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냐’는 비아냥을 들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터이다. 박 의원은 지지층만을 상대로 한 반쪽 소통을 원하는 것인가.
5·16을 둘러싼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면서 논란이 일자 일방적으로 논쟁 종료를 선언했다.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국민들도 많다고 전제했으나 실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바엔 그만하자는 독선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 삶을 챙겨야 하는데 역사논쟁만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한 지도자의 세계관이나 철학을 반영하는 역사논쟁은 민생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민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건 지도자가 내놓은 정책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그 사람의 경험과 역사 인식이다. 지도자의 철학과 역사관이 정책에 힘을 불어넣고 신뢰를 심어준다. 공약(空約)으로 국민을 일시 속일 수는 있어도 역사관이나 철학을 숨기기는 어렵다. 더구나 새누리당이고 민주통합당이고 내놓은 정책에 커다란 차이가 없다. 지도자의 역사관 검증이야말로 최고의 정책 검증이다.
기자는 묻고, 지도자는 답하는 게 숙명이다. 묻느냐, 답하느냐의 차이일 뿐 국민들의 궁금증 해소라는 책무는 동일하다. 기자들은 국민들을 대신해 물을 권리를 위임받았다. 누가 준 권리냐고 물을 요량이라면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누구를 먼저 찾는지 반문해 보면 답이 나온다. 과거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르윈스키와 관련한 질문에 시달렸다. 심지어 한·미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미국 기자들의 관심사는 섹스 스캔들로 쏠렸다. 클린턴은 그 질문이 불편했을지 몰라도 외면하지 않았다. 지도자라면 명예훼손이나 인격모독이 아닐 경우 답해야 한다. 변명만 늘어놓게 하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듯, 하고 싶은 말만 하려는 정치인 역시 지도자가 아니다.
박 의원은 18대 대권 고지에 가장 근접해 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이나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여야와 이념을 떠나 많은 이들이 그의 불통을 얘기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박 의원은 내 말이 곧 끝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한 보수 인사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그간 박 의원은 촌철살인의 정치인으로 통했다. 정치언어의 과잉 속에서 절제를 잃지 않고 핵심을 짚곤 한 덕이다. 그것은 할 말만 해도 되던 야당 시절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영애’로, ‘퍼스트 레이디’로, ‘유력한 대선 주자’로 살아온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없다면 박 의원의 정치는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머지 반쪽 세상과도 만나고 소통하는 게 대권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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