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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의 연차총회, 일명 다보스포럼에 다녀왔다. 다보스포럼 직전에 발표된 올해 전 세계 위협요인들에는 예년과 유사하게 기후변화, 자연재해, 데이터 사기, 사이버 공격 등이 포함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가능성은 낮지만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감염질환의 전파가 거론되었다. 필자가 토론자로 참여했던 여러 세션 중에는 ‘질병X(disease X)’가 있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정의한 질병X는 현재는 사람에게 감염이 안되거나 거의 안되는 질병 요인인데 만약 이들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감염시키게 되면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서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말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지구상 인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명을 감염시키고 적어도 5000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스페인 독감은 우리가 예방이나 치료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감염질환이 발생해 전파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를 겪은 한국으로서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 당시 메르스에 180여명이 감염되어 38명이 사망에 이르렀고, 1만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격리되었다. 그보다 12년 전인 2003년에 있었던 사스(SARS) 사태도 기억할 것이다. 8000여명을 감염시켰고 77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여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 외에도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최근에는 감염빈도가 높아진 에볼라 바이러스는 전파가 그나마 느려 다행이지만 감염 시 치명적이고, 몇 년 전 임산부 등 우리를 걱정시킨 지카 바이러스도 계속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감염질환의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전파도 점점 더 넓게 빨라지고 있다. 질병X 세션에서는 이들 감염원의 전파가 최근 왜 더 빠르고 넓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원인을 도출해 토론했다. 첫째는 지구촌이 여행, 무역 등 모든 면에서 연결이 너무 잘되어 있고, 둘째는 옛날에 비해 도시를 중심으로 고밀도로 모여 살아서 전파가 잘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후변화에 의해 모기와 같은 바이러스 매개체의 활동영역이 높아진 것과 지카 바이러스나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무분별한 벌목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여행이나 무역을 줄일 수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도시생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드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기후변화 문제는 많은 나라가 공감은 하고 대응은 하고자 하지만 빠른 시간에 되지도 않고 뭐 한 가지 만만한 것이 없다. 현재로서는 위생 및 청결상태 유지에 의한 바이러스 감염 확률 저감, 백신 개발과 접종에 의한 예방 강화, 발생 시 전파 최소화, 항바이러스제 등을 이용한 감염자의 신속한 치료가 해답이다.

우선 백신의 경우를 보자.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우선순위 질병들(priority diseases)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이들에 대한 대비와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2018년에는 이 리스트에 질병X도 추가했다. 예방에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 백신의 경우 보통 개발에 5~10년이 걸리는데, 우선순위 질병 도입 후 에볼라 백신의 경우 1년 만에 개발하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 공동대응체인 전염병 준비혁신 연합체(CEPI)도 발족해 앞으로 백신 개발 등에서 좀 더 효과적이고 빠른 대응이 기대된다.

백신의 접종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감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모든 바이러스에 대해 백신을 맞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반드시 맞아야 할 예방백신을 맞지 않는 경우 일어나는 위기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영·유아에게 특히 위험한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데 전염력이 매우 높다. 우리는 생후 12~15개월, 만 4~6세에 한 번씩 두 번 백신접종을 해서 예방해 왔다. 하지만 여행 등을 통해 일부 동남아, 유럽 국가에서 감염되어 귀국하는 사례들이 종종 보고되어 왔다. 올해 들어서는 공중보건 여건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일본과 미국에서 수십명의 홍역 발생이 보고되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워싱턴주는 비상사태를 선포 중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 환자의 대다수가 홍역 백신접종을 하지 않아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방백신을 맞지 않아 홍역 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본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해를 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가에서 정한 혹은 권장하는 백신접종은 반드시 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도 적극 활용해 전파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구글은 독감의 발병을 예측하는 독감트렌드(flu trends)라는 서비스를 했다. 이는 구글의 강력한 검색기능을 이용해 사람들이 독감에 걸렸을 때 주로 검색하는 약 40가지 단어들을 기반으로 예측하는 기술인데, 자체의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보완적인 용도 정도로의 사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KT에서 주창한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젝트도 있다. 휴대폰 위치정보를 통해 감염국가를 한번이라도 거친 사람은 질병관리본부 등에 통보함으로써 감염병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보다 정교한 대응시스템의 개발도 기대된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바이러스뿐 아니라 질병X에 해당하는 바이러스들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과학, 공학 및 의학기술의 융합을 통한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의 빠른 개발, 개인 위생과 생활환경의 청결, 권장된 백신의 접종,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한 관리와 확산 방지 등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야 점점 더 위협적인 바이러스 감염질환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개개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감염이 되지 않도록 평소 주의를 기울이고, 감기나 독감에 걸렸을 때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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