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통령은 거짓의 가면을 쓰고 ‘망국의 춤’을 췄다. 비선 실세와 문고리 3인방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경제정책이 아닌 ‘기업 목조르기’를 설계했다. 일부 고위 관료들은 권력놀음에 취해 ‘최순실 부역자’를 자처했다. 재벌은 부패한 정권에 뒷돈을 대며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 지난 4년은 야만의 시절이었다.

박근혜는 거짓으로 무너졌다.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공약부터 거짓이었다. 경제민주화는 취임 6개월도 안돼 폐기됐다. 기초연금·반값 등록금·4대 중증질환 100% 보장 등 복지공약은 파기 또는 축소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엔 틈만 나면 규제완화를 주술처럼 외쳐댔다. “규제는 암덩어리다. 단두대에 올려 규제 혁명을 이루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겉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속셈은 ‘기업 삥뜯기’를 위한 밑밥 깔기였다. ‘노동개혁 5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원샷법’ ‘규제프리존법’ 등은 규제완화의 외피를 두른 ‘대기업 민원 해결법’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국민사과를 하며 흘린 눈물도, “필요하다면 특검을 통해서라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세금이 많이 들어간다”며 세월호특조위 활동기한을 연장하지 않은 것은 ‘7시간 미스터리’가 밝혀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터이다.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게이트의 주범이란 사실이 밝혀진 뒤 2차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보인 눈물도 거짓이었다. “모든 사태는 저의 잘못이다. 검찰 조사는 물론 특별검사의 수사까지 수용하겠다”고 하더니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고 190만 촛불에 포위돼 섬처럼 고립된 청와대에서 장기농성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 뒤편으로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밝힌 3차 대국민담화에서도 끝내 거짓의 가면을 벗지 않았다. 국회를 분열시켜 탄핵을 모면하려는 간교한 정치적 술수를 감춘 채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거짓으로 쌓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무너졌는데도 또 다른 거짓의 성(城)을 쌓으려는 대통령을 시민들은 마음속에서 탄핵한 지 오래다.

재벌들의 도덕성은 정권과의 부당거래로 무너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재벌과 대통령이 한 몸이 돼 재단 출연금이란 명목의 뇌물을 주고받은 부당거래 사건이다.

재벌들은 청와대와 최순실의 압박이 두려워 미르·K스포츠 재단에 뒷돈을 댄 ‘강제모금의 피해자’가 아니다. 권력에 협조한 뒤 각종 현안을 해결하려 한 ‘자발적 공범’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낸 삼성은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켰다. SK는 배임죄로 두 번씩이나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총수가 사면으로 풀려났다. 롯데는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뒤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70억원을 냈다가 되돌려 받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보다 정권의 비호와 묵인 속에 다른 경제주체의 몫을 빼앗으며 몸집을 키워온 게 한국 재벌의 어제이자 오늘이다. 재벌들은 영화 <부당거래>에 나오는 대사처럼 “(정권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4년간 한국 사회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무너졌다. 시중에 떠도는 “임금은 착취이고, 세금은 수탈이고, 물가는 갈취이고, 일자리는 노예이고, 부동산은 거품이고, 복지는 생색이고, 안전은 재앙”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청와대에 한 대당 5만~10만원짜리 백옥·마늘·감초·신데렐라 주사가 반입될 때 서민들은 가계부채와 주거난으로 무너졌다.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무너졌다. 청년들은 돈도 실력으로 여기는 금수저들의 반칙으로 무너졌다. 교육계는 비선 실세와 결탁한 교수들의 교육농단과 복면 집필진이 밀실에서 만든 친일·독재 미화 국정 역사교과서로 무너졌다. 문화예술계는 검열과 블랙리스트로 무너졌다. 의료계는 길라임 대통령과 최순실 자매의 대리처방으로 무너졌다. 체육계는 비선 실세와 협작한 ‘왕차관’의 미운털 찍어내기로 무너졌다.

무너진 사회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야만의 시절에 종지부를 찍고, 변혁을 일궈온 것은 시민들이다. 수백만 촛불민심은 거짓의 가면을 벗기고, 망국의 춤도 멈추게 할 것이다. 그게 나라도 살고, 시민도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야만의 시절을 견뎌온 시민들에게 대통령의 버티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능욕의 시간만을 늘릴 뿐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