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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된 부와 권력이 연출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농단은 흡사 적색거성과 마찬가지로 수명을 다한 한국식 권위주의의 비극적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 사례이다. 한때 ‘한국식 민주주의’ 또는 ‘아시아적 가치’로 지칭되며 칭송과 조롱을 동시에 경험한 한국식 권위주의의 기원과 본질은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권위주의의 특성은 공화국과 왕국, 공공성과 효율성, 애민과 애국, 자치와 억압, 팀제와 계층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서양과 동양 등으로 대비가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식 권위주의의 기원은 왕조, 유교, 일제, 전쟁, 안보, 성장, 독재, 재벌, 동원, 충성, 학벌, 극우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 사회와 경제 전반에 폭넓고 깊숙이 자리한 억압적 권위주의 통치는 현대판 신분제와 기득권 보호라는 비정상적 담합구조를 조장했다. 더불어 공정경쟁을 도외시한 성장연합 특유의 패거리 문화도 권위주의 확산과 유지에 일조했다. 특히 최근 폭로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비선 실세를 앞세워 재벌과 한류를 결합한 신종 유착관계로 밝혀지고 있다.

한때를 풍미한 한국식 권위주의의 별칭은 관료적 권위주의, 발전국가, 권위적 자본주의 등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영구집권 구상과 직결된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란 자본주의(성장)를 위해 민주주의(분배)를 포기하는 불균형 발전전략의 전형에 해당한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관료적 권위주의의 원조인 중남미 방식에서 출발해 정부 주도로 급속한 수출지향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을 배제하고 재벌을 편애하는 산업질서를 확립시켰다.

일본이 시작하고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경유해 중국까지 이어진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무용담은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격랑 속에서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물론 재도약에 성공한 싱가포르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선전이 동아시아의 영광을 수호하는 보루이지만 양국은 국가 규모와 가치 모두에서 극단적 변칙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우리의 새로운 진로모색과 직결되기 어렵다.

후발산업화의 선구적 사례인 20세기 초반 독일과 일본은 물론 20세기 중반 구소련 스탈린과 북한 김일성의 경제기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국민행복과 괴리된 짜내기 방식의 고도성장은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기 어렵다. 이는 20세기 후반 정부 주도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아일랜드와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권위로 점철된 구시대의 유산과 확실히 단절하는 민주 한국의 차세대 비전과 전략은 무엇인가? 먼저 차세대 정부는 성장과 분배는 물론 계층, 성별, 지역, 산업구조, 기업지배구조 등을 포괄하는 균형발전의 이상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통령 탄핵과 연계된 정략적 권력구조 논쟁을 탈피해 문제의 본질과 직결된 형평, 정의, 공감, 소통, 헌신, 공개, 청렴, 윤리, 생태 등을 요체로 하는 공공마인드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국정의 실패가 국민적 불행을 가중시키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음 대통령의 인격과 역량을 보다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발전전략은 소수의 이익보다는 다수의 행복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따라서 행복국가의 구현과 직결된 핵심성공요소인 복지, 풍요, 품격, 안전, 환경, 공동체, 조합, 만족, 여가, 예술, 체육, 배려, 공존 등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김정렬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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