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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총천연색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생중계하는 TV는 평양 거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였다. 연도를 메운 한반도기와 꽃술, 초록 가로수, 높다란 빌딩은 청량한 가을 하늘과 대비를 이뤘다. 뚜껑 없는 차에 올라 시가지 카퍼레이드를 한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의 발전이 놀랍다”고 말했다. TV에 비친 평양은 계획 신도시이다. 한국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다. 그러나 오래전 평양은 고대 왕조의 수도였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였다. 전쟁은 도시의 역사까지 앗아갔다. 평양에서 온전한 유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가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평양은 고조선의 도읍이었다. 이름은 대동강변의 ‘평탄하고 넓은 땅(平壤)’에서 따왔다. 요동 벌판에 있던 고조선의 수도 평양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는 설도 있다. 대동강변의 평양이 고조선의 초기 수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기자 조선, 또는 고조선 후기의 수도는 평양이다. 기자는 평양에서 고대의 조세제도인 정전법을 실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평양지도에는 정전제에 따라 토지를 구획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자의 영향은 ‘기성(箕城·평양의 다른 이름)’, ‘기자궁’ 등에 남아 있다. 옛날 평양에는 버드나무가 많았다. 주민의 성격이 강하고 사나워 버드나무를 심어 부드럽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양을 류경(柳京)이라고도 한다. 류경호텔과 류경 정주영체육관, 버드나무 거리 등에 흔적이 남아 있다.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향하는 거리에 시민들이 꽃을 흔들며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고구려가 국내성에 도읍할 때, 평양은 별도(別都)로서 반도의 중심 도시 역할을 했다. 장수왕의 천도로 다시 수도가 되었다. 장수왕은 안학궁을 짓고 대성산성을 수축했다. 이때 평양성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평양 인근의 고구려 고분군과 동명왕릉은 이 시기의 유적들이다. 평양의 진산은 금수산이다. 모란봉으로도 불리는 산의 정상에 을밀대가 있다. 평양성을 지킨 고구려 을밀장군의 전설에서 딴 이름이다. ‘을밀대의 봄놀이’는 평양팔경의 첫째로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대동강 강물이 평양으로 흘러들면서 펼쳐놓은 섬은 능라도이다. 비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섬 중심부에 북한 최대의 종합경기장 ‘5·1경기장’이 있다. 문 대통령이 집단체조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했던 곳이다.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은 누정의 도시이다. 부벽루, 연광정, 함벽정, 읍호루, 풍월루 등이 있었다. 많은 정자와 누대가 전란으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정자 가운데 연광정과 부벽루가 가장 유명하다. 평양 내성에 붙어 있는 연광정에는 ‘천하제일강산’을 비롯해 크고 작은 현판과 주련이 걸려 있다. 대동강의 바위절벽 청류벽 위에 서 있는 부벽루는 평양의 대표 누정이다. 평양을 찾는 문인들은 반드시 이들 정자에 올라 시를 지었다. 부벽루에 걸려 있었다는 고려 문인 이색의 시 ‘부벽루에서’는 절창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평안감사가 부임하면 이곳에서 환영 연회가 열렸다. 김홍도 등 여러 화가가 연회 모습을 ‘평안감사연회도’에 담아냈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의 무대도 대동강 부벽루이다.

풍류도시 평양은 조선시대에 손꼽히는 유람처였다. 조선시대 평양이 지방관의 부임지로 인기가 있었던 것은 대동강의 풍류 놀이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만들어졌다. 중국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이나 한양으로 오는 명·청 사신들은 반드시 평양에서 하루나 이틀을 머물렀다. 각종 연행록에서 평양 일지는 빠지지 않는다. 명나라 사신 동월의 기행문 <조선부>는 평양의 산천과 풍속을 자세히 담고 있다. 단군이 평양에서 개국했다는 내용과 함께, 기자의 사당에 ‘고조선의 두 번째 시조’라고 쓰인 나무 신주를 모셨다는 등의 고조선의 사적을 기록한 게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에도 평양 여행은 인기였다. 지식인들은 고구려의 향수를 간직하고, 기독교와 서양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개화된 도시라는 평양의 매력에 끌렸다. 일본은 낙랑군의 옛터이고 청일전쟁 승전지라는 타율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평양 관광을 부추겼다. 막 개통된 경의선은 근대의 표상이 된 철도 여행을 자극했다. 박은식, 최남선, 이광수, 양주동은 여행기를 통해 평양의 과거와 미래를 그려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문화 및 예술분야의 교류 증진도 포함됐다. 앞서 문화재청은 오는 27일부터 개성 만월대를 공동 발굴한다고 발표했다. 정상 간의 합의로 남북 문화 교류 협력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고구려 왕릉, 벽화, 누정 등 남북이 함께 연구하고 조사할 내용은 차고 넘친다. 역사 유산을 자랑하는 평양의 가능성은 무진장이다. 평양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역사문화 도시로 태어날 날도 머지않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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