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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을 상습적으로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가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이번 사건은 이씨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라며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씨가 받고 있는 범죄 혐의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기소 후에도 반성은커녕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왔다는 점에서 당연한 판결이다.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으로 수사가 이뤄져 기소된 유명인사 가운데 첫 실형 사례라는 의미도 있다.

극단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유사강간치상)로 구속기소된 연극연출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후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법원은 이 전 감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 동안의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연합뉴스

양형 못지않게 주목되는 것은 판결 내용이다. 재판부는 기존 성폭력 사건 판결과 달리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토대로 유무죄를 판단했다. 재판부는 ‘폭행·협박이 없었으니 강제추행이 아니다’라는 이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상황과 그(추행) 행위가 이뤄진 과정에 비춰볼 때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인 만큼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한 이씨 주장대로 설사 연기지도였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가해자의 물리적 강압이나 피해자의 적극적 문제제기가 없었다 해도 성폭력 범죄가 성립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성폭력 당시 입은 상해를 넘어 우울증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상해 범주에 포함시켜 유사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한 것도 진일보한 대목이다.

이번 판결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온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투 운동은 일상 속 성차별 구조를 깨부수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려는 변혁의 흐름이다. 재판부가 미투 운동의 이 같은 취지를 이해하고, 기울어진 권력구조에 의한 폭력을 세심하게 짚어낸 점을 높이 평가한다. 향후 유사한 성폭력 사건 심리에서도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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