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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경향의 눈] 남욱 가라사대

opinionX 2022. 11. 24. 10:43

‘대장동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남욱 변호사의 폭로가 장안에 화제다. 1년 전에 남씨는 말했다. “A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남씨는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 “A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땐 A가 대통령이 될지 몰라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고. A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지난 21일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난 남씨는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쏟아냈다. “2015년 2월부터 천화동인 1호 지분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실 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만배씨에게서 들어서 알았다”는 것이다. 2013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전달한 3억5200만원에 대해 남씨는 “(유 전 본부장이) 본인이 쓸 돈이 아니고 높은 분들한테 드려야 하는 돈이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높은 분들’은 “정진상(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과 김용(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A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검찰 수사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A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수록 수사는 순풍에 배 가듯 힘을 받는다. 하지만 남씨는 무슨 일인지 ‘살아 있는 권력’인 B, 검찰 고위직인 C·D 관련 사건도 증언했다. B는 윤석열 대통령, C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 D는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다. 

B와 C에 관한 남씨의 발언은 “김만배를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묻는 검사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요약하면 2011년 김만배가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던 부산저축은행 브로커 조우형에게 당시 주임 검사인 B와 친분이 있는 C를 변호인으로 소개했고, 김만배가 수사팀에 조우형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조우형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었지만 결국 처벌받지 않았다. 

D는 이른바 ‘법조인 50억 클럽’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인사다. 남씨는 재판에서 “김만배로부터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수수 사건을 잘 봐달라고 D에게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남씨는 김만배가 D와의 친분을 과시한 적 있느냐는 검사 질문에도 “그렇다. 여러 차례 말했다”고 답했다. 

남씨 증언이 있기 전에도 대장동 세력과 B·C·D의 유착 의혹은 제기됐지만 검찰은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있다. 김만배의 누나는 B의 아버지가 소유한 서울 연희동 주택을 19억원에 사들였다. C의 딸은 화천대유에 입사해 대여금 명목으로 11억원을 받았고, 대장동의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C의 인척이 운영하는 대장동 분양대행업체는 김만배로부터 대여금 명목으로 100억원을 받기도 했다. 대장동 수사 단초가 된 회계사 정영학의 녹음파일에는 김만배가 “50개 나갈 사람을 세어 줄게”라며 곽상도 전 의원과 함께 C와 D의 실명을 언급한 대목도 있다. 

아프리카 남동부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난초 ‘안그레쿰 세스퀴페달레’는 꽃이 독특하다. 기다란 관 모양인데 꿀주머니가 그 밑에 있다. 찰스 다윈(1809~1882)이 재보니 관 길이가 28㎝나 됐다. 다윈은 이 꽃을 보자마자 28㎝의 주둥이를 가진 매개 동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윈 사후 그의 예언대로 주둥이가 긴 나방이 발견됐다. 난초의 꽃이 기다란 관 모양으로 진화한 것은 주둥이가 긴 나방이 수분을 해결해준 덕분이고, 나방은 꿀을 먹기 위해 난초 꽃의 관 길이만큼 주둥이가 기형적으로 길어진 것이다. 

정권과 검찰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기이하게 진화하고 있다. 외계인이 망원경으로 대한민국의 권력 생태계를 관찰한다면 지구가 태양을 5바퀴 도는 시간을 주기로 대살육전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검찰의 존재를 예측할지도 모른다. 난초가 번식을 위해 나방과 거래하듯 한국의 권력자와 검찰은 불가분의 관계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정권과 검찰은 공생과 공진화(共進化)를 넘어 일심동체가 돼가고 있다.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각 부처와 국가정보원 요직에 대통령과 친한 검사들이 임명되고 있다. 검찰의 힘은 기본적으로 강제적인 수사에 있지만 더 큰 영향력은 범죄 혐의자를 선택적으로 수사하는 데서 발휘되고 있다.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는 말이 시대의 유행어가 됐다. 

검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검찰은 남씨의 증언 가운데 A 관련 내용만 수용하지 말고, B의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 대장동 세력과 법조인들의 유착 의혹까지 철저히 수사해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검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수사를 하는 것 외에는 없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연재 | 경향의 눈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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