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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고통의 신정론

opinionX 2018. 8. 10. 11:45

기독교인도 한때는 고통의 신정론을 말했었다. 한민족이 겪은 모든 고난이 사실은 한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한 신의 섭리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암울한 일제강점기 함석헌이 ‘성서조선’에 연재한 조선역사가 대표적인 예다. 조선역사는 굴욕과 좌절,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 맡겼던 사명을 망각하자 고난을 주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해 민족에 재생의 기회가 온 것이니 고난을 일종의 시험으로 받아들이자.

이제 이러한 고통의 신정론을 말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복을 베풀기 위해 고난을 내려주었다는 것으로 변질되어 나타난다.

국무총리 후보에 올랐다가 낙마한 문창극이 2011년 온누리교회에서 행한 연설은 한국 사회에 주류로 자리 잡은 기독교 집단의 뒤틀린 고통의 신정론을 민낯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아직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는 게으른 죄 깨끗하게 안된 거야. 분단을 시킨 거예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 와서 우리한테, 분단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이 이 정도 살게 되는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함석헌의 고통의 신정론이 신이 부여한 소명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면, 문창극의 고통의 신정론은 현재 누리고 있는 행운을 극단적으로 극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을 믿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 가난에 허덕거리는 북한 인민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고통의 신정론이 행운의 신정론으로 재빠르게 변신한다.

우리는 종교인이라면 마땅히 초월적 이상에 비추어 현세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려 노력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행운의 신정론에 빠진 기독교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세를 살아가는 것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 주류 기독교 집단은 자신들이 누리는 행운이 왜 마땅한 것인지 정당화하는 데 온정신이 팔려 있다. 세상이 부조리하거나 악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복을 누리려고만 할 뿐 세상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요만큼도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다.

현세의 삶의 질서와 모순되는 고차원적인 규범적 질서가 없으면 현세를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현세를 넘어서는 더 좋은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현세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와 모순을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는 일이 벌어진다. 청문회 때마다 노상 나타나는 단골 인물군.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자임하고 말끝마다 법치를 외치면서도 현세에서 온갖 편법을 통해 출세하는 자들. 그러면서도 아무런 모순과 분열을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행보.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소멸.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종교 관념과 실제의 삶 사이에 체계적이고 일관된 관계맺음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상 한국 개신교에는 거의 아무런 터부가 없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신탁을 상징이 아닌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거나 상가에 가서 영정에 절하지 않는 등의 소극(笑劇)만 빼면.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에게는 주술이 아닌 종교 윤리에 의해서만 행위를 조절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아무것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화할 수 있다. 하나님의 축복의 현시(顯示)인 현세의 성공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그 어떤 터부도 다 깨트릴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세계 최대 장로교회인 명성교회에서 부자 세습이 버젓이 합법화되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라 신앙 고백하기에 바쁜 주류 기독교 집단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기독교는 한때 세습질서의 질곡을 깨트리는 복음이었으나 지금 온 나라에 유사 세습질서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복된 소리를 전혀 전하지 못한다. 고통의 신정론을 되살리는 진정한 복음이 필요한 때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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