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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러닝을 활용하면 요즘 몰두하고 있는 연구과제의 단순한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웹 검색을 하다가 깔끔한 설명을 해놓은 블로그를 발견하였다. 블로거는 머신러닝이 무수한 첨단기술로 범벅이 된 무슨 도깨비방망이 같은 게 아니라 데이터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자신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밝힌 그는 머신러닝이 수학과 통계학을 기초로 하는 ‘학문’ 영역이지 세간의 오해처럼 절묘한 어떤 ‘기술’이 아니라고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으니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나, 시장에서는 기술로 오해하여 단기간에 노하우를 알려 달라고 조르는 어처구니없는 요구가 많고, 그래서 ‘수학과 통계를 몰라도 4주 만에 익히는 머신러닝’이라는 사기와 같은 강좌들이 쏟아진다고 비판한다. 수학이나 통계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누군가가 만들고 증명한 공식으로 열심히 계산만 하는 공학도들이 이런 상황에 일조하고 있다는 촌철살인에 가슴이 뜨끔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냉소적인 비판에 놀라서 블로거가 어떤 내공을 쌓아왔는지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국내외 대학원에서 통계학, 시뮬레이션, 머신러닝에 이르는 긴 학문적 여정을 거쳐 수학과 통계학에 녹아날 정도로 고생고생하며 데이터를 다루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과 그렇게 훈련받고 제대로 성장한 인재가 어떤 잠재력을 지니는지 알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살짝 불편함이 남는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여 도달한 경제학의 계량분석은 현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을까.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최소한, 개발주의로는 오염되지 않는 시정을 펼쳐주리라 믿고 지지했던 지자체장이 서울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을 재개발하여 한국의 맨해튼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여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고, 여론전에 밀린 탓인지, 아니면 정책이 유효하지 않다고 검증된 탓인지 정부는 최저임금 정책을 슬그머니 후퇴시켰다. 경제학은 대체로 개발주의를 옹호하고 소득주도성장이나 복지정책에 대해 배타적인데 결국 이를 넘지 못한 것처럼 여겨져 씁쓸하다.

국내외 여러 사례를 보면 도시개발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흔한 주장과 달리 대규모 개발은 경제침체의 원인일 수 있다. 개발사업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오지만, 지속적 소득증가를 가져오지 않는다. 자칫 부동산으로 막대한 소득이 몰리면서 중장기적으로 가계소비의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 대공황, 일본의 버블붕괴, 최근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부동산 과잉투자이다. 한편 소득주도성장은 일반 대중에게 재화를 소비할 여력이 있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개발주의의 위험이나 소득주도성장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복지정책이 수학으로 단련된 경제학자들에 의해 번번이 부정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수 없이 많은 천재와 수재들이 수많은 증명을 하면서 여러 진보적인 도전과 맞서 싸우며 키워 온 세계일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경제학이 지니는 수많은 약점과 그에 대한 도전을 보완하고 흡수하면서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답이 나오게 진화한 자가증식체계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경제학자가 된 사람들은 가치를 배제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순수하게 객관적 자료만으로 분석하였으니 경제학이 내놓는 답이 정답에 가깝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한경쟁과 자본의 효율이 진리라면 이보다 더 암담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경제학이 쌓은 현란한 분석방법에 기가 눌리지만, 내놓는 답들이 하나같이 자본에 유리한 게 많고, 그래서 경제학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부유해지기 위한 철학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무식한 공돌이란 비판을 받더라도 계속 도전을 이어가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어 보인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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