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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군데 후원단체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국내외 제한을 두지는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아동을 주로 후원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한 곳을 제외하고는 특정 아동과 결연하여 후원하고 있지는 않다. 결연아동이 지정되어 있는 곳은 제일 처음 후원한 곳인데, 후원의 계기가 ‘동생 대신’이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형제자매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첫 아이를 낳자마자 단념했다. 대신 아이가 동생을 찾기 시작할 즈음 후원을 시작했다. ‘이 아이가 네 동생이야’류의 낭만적인 설정인 셈이었다. 후원 아동의 나이도 그래서 내 아이보다 한 살 정도 어린 아이로 정했다.

단 한 명의 아이를 후원하기 위해 나는 무수히 많은 후원단체를 비교하고 비교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아무 데나 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내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일단 종교적인 색채가 없어야 했다. 구호를 구실로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를 나는 비열하다고 여겼다. ‘신의 도움으로 너희가 후원자를 만났다’라는 식의 전파를 하려면 너희를 이토록 참혹한 전쟁과 기근과 학대에 놓이게 한 신에 대한 변명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반감이 있었다. 서구 중심의 교육이나 개발 논리가 강한 곳도 피하고 싶었다. 서구 자본주의 중심의 후원단체가 미개척 대륙의 문명과 관습을 파괴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어려운 사람을 돕되 어려운 사람을 개조하지 않는 그런 후원단체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단체를 하나 만드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결국 내 고집을 조금 꺾었다. 신을 팔든, 이념을 팔든, 일단 주기로 한 밥은 정직하게 주는 곳, 기금 운용이 비교적 투명하다고 평가받는 곳들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한 후원단체에 결연 신청서를 냈다. 후원아동을 지정한 건 앞에서 언급한 낭만주의적 감성이 한몫했다. 후원아동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다른 어려운 삶의 고통에 대해 구체적인 실체를 보고 느끼는 일이 내 아이에게도 교육적 효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후원을 한 아동은 남수단에 살고 있었다. 분쟁지역이었다. 어떤 해에는 살아 있는지 생존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편지를 쓰기도 했다. 가끔 답장이 왔다. 아이는 잘 크고 있었고, 가족 모두 건강해 보였다. 아이의 사진을 보는 일도 반가웠고,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는 마음은 늘 진심이었지만, 나는 그 편지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아이가 쓰는 편지는 늘 비슷했다. 고맙다,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다. 간단하게나마 선물을 보낼 수 있던 때는 지극히 개별적인 기쁨이 드러났지만 선물이 금지되면서는 그나마의 개인적인 일상도 공유하지 못했다. 아픔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아이도 어렸지만 개인적인 정보가 들어가는 이야기는 금지되어 있었다. 편지와 사진을 통해 내가 알 수 있는 건 후원에 대한 감사의 보고가 전부인 셈이었다. 어느 날 문득, 감사와 안녕을 보고받는 이 편지를 받는 일이 밥과 신을 바꾸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나는 감사 기도에 목매는 하나님이 되고 싶은 건가. 진심을 다해서 후원아동들과 편지를 교류하고 기도하고 찾아가는 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진심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인격은 거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후의 후원은 특정인을 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비로소 궁금해진다. 고통은 왜 누군가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설득되어야 하는가. 고통을 설명해야 하는 건 기금을 모금할 때만이 아니다. 공적 기금이나 후원이 필요한 이들도 스스로 자신의 고통이나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결핍과 아픔과 절망을 누군가의 특정한 이름으로 노출시키고 공감을 얻는 사회를 두고 ‘고통의 포르노’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고통의 증명’을 강박처럼 요구하는 사회는 맞는 것 같다. 세상 어딘가에 기근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 전쟁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 학대가 있고, 세상 어딘가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민과 연대가 가능할 수는 없을까. 얼마나 아픈지 묻지 않고 돕는 사람들의 연대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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