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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뼛조각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뼛조각은 미수습자의 유해가 아닌 동물의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것은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끝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정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을 종료한 뒤 절망 속에 살던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류품이 선체 밖에서 발견돼 유실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가 기울고 있어요.” 2014년 4월16일 단원고의 한 학생은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첫 신고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데도 ‘기다리라’는 말을 따르다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했고 일각에서는 ‘에어포켓’ 안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배가 침몰한 뒤 시신이 발견되자 서로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기를 바랐다.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비명이 귀를 갈랐다. 피붙이임을 확인하는 순간 가족들은 비명과 함께 혼절했다. 잠수사들은 숨진 아이들을 인양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속 아이들은 “왜 이제 왔냐”고 원망하듯 움직이질 않았다. 잠수사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움직였다.
28일 4대 종단의 미수습자 조기수습기원제가 반잠수식 선박 인근에서 열리고 있던 상황에서 세월호 조타실 옆을 받친 반목 쪽(네모 표시)에서 뼛조각들이 발견되자 작업자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진도 _ 사진공동취재단
며칠이 지나 희망의 끈이었던 에어포켓도 사라졌다. 세월호 생존의 희망도 사라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젠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만을 바랐다.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가족들도 하나둘 떠났다. 세월호 침몰 102일 만에 295명째 희생자 황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됐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황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황양의 친구들은 빈소의 조화에 “잊지 않을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고 적었다. 그해 11월 정부의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은 종료됐다. 배에 탔으나 아직도 내리지 못한 9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지난 23일 진도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인양됐다. 완전히 드러난 세월호를 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곳곳이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에 내 아이가 있다며 탄식과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딸이 저 안에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주저앉았다. 세월호에서 추가로 유류품이라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다. 지상으로 올린 선체와 세월호가 누워 있던 해저도 샅샅이 수색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는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게 나라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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