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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내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방법을 몰라서 혹은 용기를 갖지 못해서, 더러는 부적절한 대상에게 성급히 드러내서 더 큰 상처를 입거나 입히기도 한다.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민병훈 감독·2007)는 비슷한 상흔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과정을 그린다.

극중 헬레나 수녀가 신학생 수현에게 먼저 다가섰던 것은 ‘유혹’하려는 의도를 지녀서가 아니었다.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라면 이해해줄 것 같았기에 이야기를 꺼내려 했던 것이다. 한편 수현이 헬레나 수녀를 냉랭하게 몰아세운 것도 미워해서는 아니었다. 애써 봉인해둔 기억이 그녀로 인해 끌어내어질 것에 대한 경계심으로 파랗게 날이 선 거다. 이쪽에서 갈망했던 건 공감이었으나 저쪽에서 읽어내고 또 두려워했던 것은 연정이었다.

세상에는 연애감정 말고도 다양한 온도와 빛깔을 지닌 선의나 호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정한 조건들이 들어맞을 때 이는 쉽게 연정으로 치부된다. 일단 그렇게 읽히고 나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부서지곤 한다. 어리석게도 수현은 헬레나 수녀의 다가섬을 연정이라 섣불리 단정했다. 하지만 그걸 그의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신학생과 젊은 수녀’는 세간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깃거리다. 설령 그가 강박적인 두려움을 벗어던지더라도 세상과 절연하지 않는 이상 호기심의 시선들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테다.

그렇다면 한편 소통하려던 헬레나 수녀의 바람은 건강하기만 한 것이었을까. 과거에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떠나보낸 일로 그토록 괴로운 이유는 본인 역시 애착했기 때문일 거다. 그게 어떤 성격의 애착이든 말이다. 고해하고 이해받으려는 갈망은 수현이 오해했던 그런 연정은 아니었더라도 부재로 인한 결핍을 메워줄 또 다른 누군가를 기대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렇지만 신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자의 결핍은 인간이 미처 채워줄 수 없는 무엇이다. 따라서 그녀의 기대 역시 어리석었다.

이렇듯 두려움으로 인해 어리석어진 한 사람과 어리석은 기대를 되풀이하는 한 사람이 만나 서로를 ‘대신’ 용서한다. 자신과 닮은 아픔을 가진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가 기억 속 인물에게 건네는 사과를 대신 받아줌으로써 본인 역시 가슴에 얹힌 바윗덩이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 장면은 극적으로 연출되지 않았다. 연기는 다소 어색하고 촬영도 투박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고단하고 비루한 현실세계에 잠깐 다른 공기가 스민 느낌을 나는 받았다. 상처 입은 이가 상처 입은 타인에게 닿아 ‘당신이 바로 나’임을 감지하고 보듬는 순간의 불가해한 온기. 그것이 영상을 넘어 상영관의 객석 사이에도 감도는 듯했다.

그 영화를 보러 간 것은 몸과 마음이 나뭇가지처럼 말라가고 있던 겨울이었다. 이해할 만한 사람은 왜곡할 것이고 왜곡하지 않을 사람은 이해를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내면이 가시 발리듯 뜯기던 그때, 저 장면은 위안이 되었다. 그날 밤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신은 내게도 상처를 내보이고 치유할 계기를 어떤 형태로든 선물해주실 것이다. 그렇게 믿으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계의 어그러짐과 이로 인한 상흔은 되풀이될 것임을 안다. ‘내보이고 치유할 계기’를 신이 덜 선물해서가 아니라 이쪽에서 오롯이 받아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리석게 두려워하면서 다시 관계에 대한 어리석은 기대를 품고, 그렇게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한순간 수현이었다가 다음 순간 헬레나 수녀이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그 둘이 서로를 대신 용서하던 영화의 장면처럼, 어설픈 내 삶의 장면들에도 이따금, 아주 잠깐씩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그대의 상처를 통해 나의 고통을, 나의 어둠을 통해 그대의 어둠을 알아보고 알아듣는 순간이.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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