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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젊은이들에게 흔히 야유를 받는 말 중 하나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이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고생 없이 곱게 크기만 했고 고생이 무엇인 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는 모든 어른들은 야유를 받고 있다. 요즘 아이들, 젊은이들도 고생을 한다. 다만 기성세대가 했던 고생과는 다른 고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고생을 하느냐고?

첫째, 태아 시절부터 고생한다. 태교로 영어를 듣기도 하고 수학을 풀기도 하면서 탄생한다. 둘째, 영·유아 시절에도 고생한다. 부모의 독박육아, 전투육아 속에 평균 2.6세부터 사교육을 시작한다. 영·유아기에 자신의 재능을 일찍 발견당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셋째, 여전히 아빠는 바쁘고 놀아주지 않는데, 엄마라도 바빠지면 형제도 없는 탓에 소위 전문가의 손에서 혹은 전문 놀이기관에서 외롭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보살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은 돌 때부터 자수성가했다고 말한다. 일찍부터 맛본 외로움이라는 정서적 고생에 대해 부모들은 도통 이해를 못한다. 넷째, 유치원에 다니면서 ‘예쁘다, 잘한다, 재능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부모 및 친척들을 위해 뼈빠지게 여기저기를 다닌다. 피아노부터 수영까지, 영어유치원부터 예체능계까지 뛰면서 최선을 다해 특별히 귀여움 받는 아이가 되기 위해 고생한다. 특별한 아이가 아니어서 부모가 실망할까봐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다섯째,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정말 공부를 많이 한다. 놀이는 금기이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대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 공부를 한다. 야망이 큰 부모를 만났다고 하면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교 수학, 때로는 고등학교 수학까지 진도를 나가야 한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면 세상에서 할 고생의 절반 이상을 다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여섯째, 중학교에 와서 특목고를 가기 위한 트랙에 어떻게든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이제 세상을 구하는 일은 할 수가 없고 동네나 지켜야 한다고 구박이다. 이때부터는 성질을 부리는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사춘기전쟁도 정말 큰 고통 중의 고통이다. 갱년기 부모들과 치르는 사춘기전쟁에서 인생의 상당한 에너지를 소진한다. 일곱째, 고등학교를 무기력하게 다니는 것도 고생이다. 꿈고문을 엄청 당하면서 다닌다. 꿈이 뭐냐고 묻기 전에 꿈꿀 수 있는 세상이나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항변한다. 여덟째, 어떻게 대학을 가긴 갔는데 비싼 등록금과 취업을 위한 성적관리 때문에 대학생활이 또 전쟁이다. 막상 졸업 후 취업자리도 별로 없다고 한다. 50대 취업률이 20대 취업률보다 더 높은 사회라고 한다. 다포세대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이 포기의 비극적 심정을 시대가 공감해주지는 않는다. 아홉째, 다 컸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결혼할 집 한 칸에 대해 엄두를 낼 수 없다. 부모세대도 죽도록 고생해서 대도시 집 한 칸이라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도시에 집 한 채 장만하려면 부모세대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돈을 벌어야 한다. 몸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사회에서는 아이이다.

이렇게 마음고생을 할 만큼 다 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더 고생하고, 더 아파하고, 여차하면 해외로 진출하라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정유라니, 최순실이니, 삼성이니, 코너링 잘하는 운전병, 블랙리스트 이야기까지 나오면 이 고생을 뭣하러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기껏 물려주는 나라가 이 따위 나라인가라고 묻고 싶고, 세월호 사건처럼 죽어가도 살려주지 않을 나라에 살게 하면서 어떤 고생을 더 하라는 말인지 따지고 싶다고 한다.

얼굴 주름은 보이지만 마음의 주름은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마음이 근원’이라 했고, 정신외상 전문가 반 데어 콜크는 마음이 펴지지 않으면 몸도 펴지지 않는다고 했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차원의 고생, 마음고생을 요즘 젊은이들은 참 많이 했다. 기성세대가 몸고생으로 이룬 사회를 기반으로 새로운 세대의 마음고생이 풀려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모두 함께 성숙해질 수 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이해를 기반으로 한 연대를 할 때가 지금이다. 온 세대가 미래를 위해.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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