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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생이 연구실 문을 밀고 들어온다. 그 학생은 학사경고가 누적되어 제적의 위기를 앞두고 있으며, 지도교수로 배정된 내가 소견서를 쓰게 되어 있다.

서울대가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연히 맞닥뜨린 전공이 적성에 안맞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하던 공부가 지겨워졌거나, 모든 것을 찾아서 해야 하는 ‘대학’이라는 거대한 제도에 적응하기에 실패했거나, 갑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에 짓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속적이게도 그 학생의 손에는 캔커피 하나가 부끄럽게 들려 있다.

그러나, 나는 느닷없이 국가의 공권력이 그 학생과 나 사이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밖에 없으며, 그 캔커피를 받는 것이 위법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무난하게 돌려보낼지를 궁리할 수밖에 없고, 그 학생이 호소하는 상황이나 결심이 ‘청탁’이 아닌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청탁’에 좌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학생에게 가장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아마도 궤변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지난해 9월 말 시행되고 난 이후에 그것이 ‘공직자’의 범위에 모든 초·중·고·대학의 교원들을 포함시키고 교육과 학술활동에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우리는 매우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난 5개월은 또한, 우리가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던 부정부패가 너무나 구체적인 형태와 이름을 가지고 정부와 재벌, 그리고 소위 ‘사회지도층’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기간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 스스로 법적용 대상자로서 이 이야기를 하기는 너무나 조심스럽고, 경천동지의 부정부패 앞에서 소소한 ‘캔커피 이야기’를 하기를 끊임없이 주저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할 때는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선택은 보통 예기치 않은 비용을 수반하는 법이다. 혹은, 우리의 교육과 학술에 스며든 국가주의의 문제는 대통령의 탄핵만큼이나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김영란법의 국가주의는 스승과 학생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외부강의 신고제를 통하여 연구자들의 헌법상 보장된 권한인 표현의 자유와 학술의 자유 또한 직접적으로 침해한다. 주로 언론이 다루었던 부분은 국공립대와 사립대 교수들의 강연료 액수였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액수와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외부 강의, 강연, 기고, 발표, 토론을 사전에 서면신고하게 되어 있고, 소속단체의 장이 그것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료강연도 신고 대상이며, 이 칼럼 또한 사전신고를 마쳤음을 밝힌다.

사전신고된 칼럼은, 그 정의상, 이류일 수밖에 없다. 사전신고된 강연과 발표와 학술 토론 또한 이류일 수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소속 기관장이 법에 규정된 것처럼 발표 내용을 사전 검열하고 ‘직무 수행을 저해’한다고 판단하여 제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명시된 제한 가능성을 잠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수행하는 강연과 발표와 학술토론과 외부기고가 근본적으로 국가의 눈길을 거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학술이 아니다.

물론 입법취지는 이해한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수백만원의 ‘강연료’를 받고 해당 기업에 유리한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공무원들이나 교수들, ‘촌지’를 받는 교사들은 마땅히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줌의 부패한 무리들 때문에 모든 연구자, 교육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와 교육활동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데 기관에 신고를 하게 하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과도 같다.

청탁금지법의 핵심은 사실 3만원, 5만원 운운하는 구체적 사례들에 대한 제약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청탁관계의 가능성들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정의하고 보고받음으로써 형법이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잠재적 대상으로 만든 데 있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은 공직자들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요컨대 ‘문화를 바꾸려는’ 기획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화는 입법의 대상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속에서 국가주의적 게으름과 무능함을 본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국가가 일괄적으로 개입하고 규제함으로써 모든 것을 단칼에 해결하려는 마법에 기대하는 와중에, 정작 크나큰 부정부패는 흘려보내면서 우리의 교육과 학술이 이렇게 인질로 잡혀있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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