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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은 꽤 춥고 며칠은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냇가의 물도 얼고 녹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출근길, 다리 가장자리에 차를 세우고 냇물을 내려다봅니다.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25년째 하는 일입니다. 큼지막한 잉어 두 마리가 흘러갑니다. 꼬리지느러미의 움직임에 서두름은 없습니다. 그마저 잠시 멈춥니다. 밤톨 크기의 돌멩이가 먹이로 보였나 봅니다. 입을 한껏 벌려 쭉 빨아들였다가 훅 하고 불어냅니다. 그 옆으로 작은 물고기 무리가 빠르게 움직입니다. 피라미입니다.

자연에 깃들인 생명체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민물고기입니다. 어류학자를 따라다닌 지 오래지만 많이 알지 못합니다. 열성이 부족한 까닭이 가장 크겠으나 그게 그것으로 보이고, 쉽게 접근해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민물고기에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피라미는 압니다. 그런데 피라미를 작은 물고기의 총칭 정도로 알고 있어 크지 않은 물고기를 만나면 생김새와 관계없이 모두 피라미라고 부를 때가 흔합니다. 피라미는 분명 민물에 사는 다양한 물고기 중 한 종이지만 작은 물고기를 대표할 정도로 쉽게 만날 수 있어 그러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하천, 호수, 강을 비롯한 민물에 서식하는 물고기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은 피라미입니다.

피라미 다음으로 개체수가 많은 물고기가 있습니다. 피라미에 이어 우리 민물의 엄연한 주인공임에도 그저 두 번째라는 이유로 이름마저 생소할 것입니다. 갈겨니라는 친구입니다. 하천에서 채집을 해보면 특별한 서식지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피라미와 갈겨니 둘 중 하나가 우점종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피라미와 갈겨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물고기입니다.

피라미와 갈겨니는 잉어목 황어아과에 속하는 물고기로서 속(屬)이 같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줄무늬를 들 수 있습니다. 갈겨니는 세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어류에서 줄무늬의 방향을 말할 때는 머리를 위로 두고 꼬리는 아래에 둔 상태에서 정하기 때문에 사진에서처럼 아가미 부근에서 꼬리 바로 앞까지 몸의 중앙을 따라 연속적인 선으로 나타나 있는 갈겨니의 줄무늬는 가로 줄무늬가 아니라 세로 줄무늬가 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피라미에는 가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줄무늬가 갈겨니처럼 선으로 나타나는 연속적인 무늬 하나가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져 여러 개 있는 것이 피라미의 특징입니다. 또한 갈겨니는 등지느러미 바로 앞쪽에 검은 반점이 있지만 피라미는 이 위치에 반점이 없다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산란 시기는 둘 다 6월에서 7월 중순 사이며, 산란 습성은 황어아과에 속하는 물고기들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고, 모래 위에 주먹만 한 크기의 자갈이 있는 곳을 산란터로 정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순식간에 수컷이 접근해 정자를 방사하는데, 수정이 일어난 알들은 서로 엉겨 붙지 않고 돌에 붙지도 않은 채 곧바로 모래 속으로 미끄러지듯 숨어 들어갑니다. 수족관에서도 산란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산란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분명히 산란이 일어난 것 같은데도 도대체 알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산란 습성에서 비롯합니다. 부화가 일어난 치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모래 속으로 바로 몸을 숨겨 유약한 자신을 지켜냅니다. 이러한 산란 습성은 피라미와 갈겨니가 우리의 하천을 대표하는 우점종으로 자리 잡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라미와 갈겨니를 생각할 때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부분은 서식지와 먹이에 대한 그들의 특성입니다. 피라미와 갈겨니는 동해로 유입되는 강원도의 하천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체 담수역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갈겨니는 계곡이나 하천의 상류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피라미는 하천의 중류지역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먹이도 차이가 있어 갈겨니는 수서곤충만을 먹이로 삼지만 피라미는 수서곤충 외에 유기물과 식물플랑크톤까지 먹습니다.

흥미로운 모습은 갈겨니와 피라미가 서식지를 공유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들이 서식지를 공유할 때 수서곤충, 유기물, 식물성플랑크톤을 모두 먹이로 삼는 피라미는 갈겨니의 유일한 먹이인 수서곤충은 먹지 않고 유기물과 식물성플랑크톤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싸우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피라미가 갈겨니보다 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크기도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양보할 여유가 있는 피라미가 자신의 먹이 일부를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먹이경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며 서로 잘 사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특성이 피라미와 갈겨니가 우리의 하천에서 우점종으로 공존할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도대체 양보라는 것을 만나기 힘든 세상에서 나는 오늘도 냇가에 쪼그려 앉아 피라미를 찾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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