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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위로, 치유의 정치

opinionX 2017. 6. 7. 11:16

우리는 흔히 깊은 위로를 보낸다고 하지만 위로는커녕 공허한 울림이 되거나 오히려 화를 돋구는 결과를 마주하곤 했다. “힘없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기, 다리 부러진 사람에게 나아서 뛰자고 하기, 쓸모없다는 느낌에 빠진 사람에게 역할이 크다는 이야기, 누운 아내에게 빨리 일어나라 혹은 빨래 못해서 입고 나갈 옷이 없으니 어서 나으라는 이야기, 팀원에게 네가 없어 일이 안 돌아가니 어서 복귀하기를 바란다는 편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 또 낳으면 된다, 천국에 갔으니 염려 말라는 기도들.”

이런 위로받지 못함의 섭섭함, 서운함은 ‘애착외상’ 이론가들이 말하는 중요한 작은 외상(small T trauma) 중 하나이다. 이 외상들이 쌓이고 쌓여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진다. 섣부르고 공감 없는 위로는 그래서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폭발은 흔히 이때에 한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 일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공부 자체가 중요하지, 어떻게 마음을 다 알아주면서 지내느냐.”

반면 좋은 위로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한다. 미국의 교육운동가인 파커 파머는 “그 사람의 심정이 되어서 스스로 쓸모없음을 느낄 때, 소진됨을 느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느낄 때, 자식이 없어서 스스로도 죽고 싶을 때 일어나는 탄식에 귀기울여야” 좋은 위로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큰 삶의 고비를 넘긴 파머는 회복에 대한 장담이나 화려한 수식어를 꺼내놓고 간 사람이 아니라 본인 자신도 느껴본 쓸모없음의 괴로움을 함께 느낀다는 듯이 손잡고 조용히 울어준 사람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본인이 아니라 누워있는 사람의 소망을 알려는 노력, 그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위로의 힘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치료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깊은 위로를 잘하지 못할까? 인지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은 “마음 아픈 것이 몸 아픈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1980년대에 선언하고, 마음과 몸의 고통을 동등하게 다루기를 주장했다. 상당수 미국 의학자들은 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는 마음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음 알아주는 것 또한 사치로 여기다보니 ‘스몰 트라우마’의 천국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의 상처는 위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모에게 단 한마디의 위로도 받지 못했다고 찾아오는 수많은 내담자 청년, 청소년들부터 국가의 고문으로 마음의 멍, 정신적 외상이 있지만 흉터가 없다는 이유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위로, 치유의 공백이 여전히 큰 채로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9일 이후,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위로였다. 얼마 만인가! 위로할 줄 아는 이가 대통령이 된 것이. 그가 이전에 살던 동네주민들부터 세월호와 5·18 유가족, 군산의 섬 어민에 이르기까지 직접 만나 건넨 위로는 진심 어린 위로로 보였다. 마치 내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는데, 주변에 물으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두 눈시울을 여러번 훔쳐냈다고 하였다. ‘탈권위’ ‘특권 내려놓기’ ‘공평하기’ ‘알아봐주기’ 등의 일상적 행동은 평범한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은 좋은 아이를 길러내는 어머니에 대해 충분히 좋은, 안아주는, 따뜻한, 평범하고 헌신적인 어머니라고 했다. 특별한 어머니가 아니다. 도널드의 부인이자 사회복지사였던 클레어 위니캇은 누군가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클레어의 말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초기행보는 신뢰도 보여주었다. 정신치료와 마찬가지로 치유를 주는 정치의 핵심은 신뢰와 위로의 능력에 달렸다. 이 신뢰와 위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부이다. 저성장, 격차, 불완전 고용, 부동산 가격 상승과 함께 일자리 부재의 시대에 정치집단의 위로가 새로운 희망의 깃발을 올리는 동기부여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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