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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앞마당에 핀 노란 민들레 꽃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물들이는 오월 어느 날, 한 여인이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공점엽’, 오욕의 역사가 덧씌운 ‘위안부’라는 이름의 굴레에 묶여 고통과 한으로 이어진 96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신 할머니, 그 분이 꽃잎이 지듯 이승의 몸을 벗으셨다.

192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소녀는 16세 되던 해,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꾐에 빠져 상해와 하얼빈 등지에서 24세까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꽃다운 세월을 치욕과 모멸을 감내하며 살았다. 해방을 맞아 평양을 거쳐 해남에 삶터를 잡았다. 그리고 인연을 만났지만 결혼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슬하의 아들을 키우면서 외롭게 사셨다.

공점엽 할머니의 영전에 염불기도를 하며 자꾸만 목이 잠겼다. 선한 눈매와 조금은 슬픈 얼굴에는 지난 세월의 절망과 체념,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과 서러움이 서려 있었다. 그 얼굴 앞에 차마 눈을 바로 하지 못했다. 제국주의 일본과 무능한 조선은 아름답고 꿈 많은 한 소녀의 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세월호의 아픔이 돋는 사월, 광주민주화운동의 함성이 아직도 쟁쟁한 오월에 공점엽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국가’라는 기구에 준엄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오늘 우리는 부끄러움과 통증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공점엽 할머니로 상징되는 개개인의 존엄과 행복을 지켜내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진심으로 미안해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정녕 위안부 문제를 그리 쉽게 정치적·정략적으로 합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모두가 인간의 고통과 연민에 대한 통찰과 공감능력이 부재한 정치가 저지르고 있는 비극이다.

생명의 윤리가 부재한 시대에 새삼 칸트의 정언명령을 떠올린다.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항상 목적으로 삼고 결코 수단으로 삼지 말라.”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늘 가언명령이다. 국가의 영광과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개개인을 ‘국가의 국민’으로 묶고 종속시켜 존엄한 생명을 이념과 욕망의 수단으로 희생시키고 있다. 또한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는 사상과 논리의 오류는 곳곳에 있다. 현대는 인간 개개인의 독립적 주체성을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 무릎 꿇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인류 역사의 비극은 무지와 허구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터.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엄청난 착각에서 깨어나고 벗어나야 한다. 이른바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그것은 필요악이라는 생각 말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전날 별세한 공점엽, 이수단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 있다._경향DB

우리는 엄중하게 말해야 한다. 세상에 필요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모든 개인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슴에 품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정직하게 말하자. 모든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한 사람인 철학자 양주는 개인의 절대적 존엄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나는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해도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한 그루 나무가 모두 푸른 생명을 지켜낼 때 건강한 숲을 이룰 수 있다는 이치를 인간사회는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뜻있는 사람들은 조목 조목 그 허구성을 반박했다. 그 중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세운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지켜낼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일본과 우리 정부는 ‘과거’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 정부의 진심과 성숙한 ‘현재’의 행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베를린 역사박물관은 1939~1945년 나치 강제집단수용소나 게토에서 나치의 만행에 고통받던 유대인 50명이 그린 작품 100점을 임차해 전시했다. 또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나치 만행을 되새겨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 책임”이고 “역사에는 마침표가 없다”고 했다. 개개인의 생명을 절대적 목적으로 지향하는 철학이 있는 정치다.

국가는 외면했지만, 신기교회 박승규 목사와 이명숙님 등 해남의 착한 벗들은 ‘공점엽 할머니와 함께하는 해남 나비’를 만들어 할머니의 말년을 외롭지 않게 위로하고 기쁨을 선물했다. 대흥사 꽃길을 함께 걷고, 생신상을 차려 드리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전복죽을 올렸다.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을 때 사람 사는 세상이 된다. 이제 국가는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을 회복해야 한다.

공점엽 할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법인 스님 ㅣ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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