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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인사를 주고받아야 오늘 나신 부처님이 좋아하실까.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술을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천지는 한 뿌리요,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합니다.”

삼십 년 전의 석가탄신일 법어였다. 삼라만상에 꽉 들어차 계시는 부처님들이여, 영원에서 영원까지 서로 존경하며 축하하자. 이 간결한 인사에 무슨 말을 더 보태랴. 그런데 이 아침 천지가 한 뿌리요, 만물이 한 몸이라는 말씀을 듣자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합니다! 악명 높던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당당하게 주고받던 인사가 지금은 어째서 낯간지러운 빈말이 되고 말았는가. 그러고 보니 동포(同胞)라는 말을 잊고 산 지도 퍽 오래됐다. 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한 형제라는 말을 건네기에는 툭하면 사람을 베고 찌르고 볶아대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고 살벌하다.

해마다 부처님의 탄신을 기리고 있다. 면목이 서지 않더라도 그래야 한다. 콧대 높으신 대통령님부터 코흘리개 어린애까지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으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루라도 짐승 노릇을 멈추고 내가 누군지 네가 누군지 우리가 누군지 생각할 수 있다. 오늘은 부처님이 얼마나 높고 귀한 분인지 알아드리자는 날이 아니다. 우리 서로 알아주며 기뻐하라는 날이다.

“생일을 맞은 부처님보다 뭇 중생이 더욱 즐겁습니다. 본래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 사바에 오셨으니 중생이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부처님도 중생으로 와서 부처 되었으니, 오늘은 중생들의 생일입니다. 이는 곧 중생이 부처라는 말이요, 천지일근(天地一根) 만물일체(萬物一體)로서 중생은 평등하고 존귀한 것입니다.”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봉축 점등식에서 스님과 불자들이 광장을 돌고 있다. 이날 밝힌 등은 현존 최고의 석탑인 국보 제11호 미륵사지석탑을 형상화한 것이다._강윤중 기자


유교 전통이 대단했던 집안에서 장남이 출가를 감행하자 “석가모니가 내 원수”라면서 아버지는 하인들을 시켜 집 앞의 강을 가로지르는 그물을 치도록 했다. “내가 살생하는 것이 불살생을 원칙으로 하는 석가모니에게 복수하는 것”이라고 하셨단다. 오죽 분하고 답답했으면 그랬겠는가마는 신분과 위계의 차등을 당연한 질서로 여기는 유학자에게 “한량없는 여러분 부처님들아, 서로 위하고 우리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하자”던 아들의 신조는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으리라.

요즘 넙죽넙죽 건성뿐인 경배가 흔해지고 너스레와 허례허식만 요란해진 현실을 보노라니 석가모니가 원수로다 하고 부르르 떨었다는 아버지의 분노가 오히려 경건하게 느껴진다. 아침부터 난다 긴다 하는 권세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처님 앞으로 달려갈 텐데 아무리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한낱 쇳물을 부어 만든 형상 앞에서 갑자기 착하고 고분고분해지는 모습이라니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들도 오늘만큼은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하다”는 진리에 동의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종일토록 들판에서 흙 파는 농부들, 언제 잘릴지 몰라 식은땀 흘리는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교도소에 들어간 도둑들, 분 바르고 술 따르는 작부들까지 의심할 바 없이 거룩하고 엄숙한 부처님이라지만 꼬물꼬물 꿈틀거리며 불평 없이 살아가던 4대강의 무수한 부처님들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없애버린 사람들,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꺼내주겠지 철석같이 믿었던 어린 부처님들을 살려주지 않았던 사람들. 올해도 농사지으며 자식들 키우고 싶다던 농부를 직사물대포로 쓰러뜨린 사람들. 이삼백 일 넘도록 고공농성 중인 부처님들을 깔보고 멸시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게 미처 몰라서 저지른 일이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였다면 사과라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저 철딱서니 없는 중생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서라. 오늘은 모자란 사람들 탓하는 날이 아니라 귀감이 될 만한 선지식을 떠올리며 흐뭇해지는 날이니.

“두 부처님이 있습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과 곳곳에 계시는 부처님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게 참불공입니다. ”

이상 해인총림 초대 방장 성철 스님(1912~1993)의 말씀이었다. 원수 갚는다고 쳐둔 그물을 거두어들인 것은 장장 십오 년이 지나서였으니, 선친은 스님이 이런 철학의 큰 도인으로 거듭난 것을 보고 비로소 마음을 풀었다고 한다. 너도나도 본래면목 들여다보며 기뻐하는 하루 보내시기를!


김인국 ㅣ 청주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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