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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위원회라는 정부기관이 있다. 흡연경고 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붙이는 데 제동을 걸었던 곳이다. 왜 그렇게 국민건강 문제를 다뤘을까? 궁금했다. 지난 4월22일자 경고 그림 부착 반대 회의 기록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회의록을 보니 여러 궁금증이 생겼다. 그 하나가 출석위원을 적는 난에 “민간위원장은 회피”라고 쓴 부분이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를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았을까?

위원장이 임명될 때 규개위가 낸 보도자료를 보니 그는 당시 김앤장 상임고문이었다. 그리고 김앤장의 홈페이지에는 그가 여전히 고문으로 올라 있다. 게다가 김앤장은 그를 ‘규제개혁위원회 민간 위원장(2014·7부터 현재)’이라고 알리고 있다. 그가 회의 참석을 회피한 이유는 김앤장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담배회사의 소송에서 담배회사를 대리하기 때문이라고 보도에 나왔다. 그의 불참은 타당한 결정이다. 그러나 묻는다. 김앤장의 상임고문이 규개위 위원장을 맡아도 되는가?

규개위의 권한은 막강하다. 담배만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생활전반에 직결되는 공공행정과 아주 밀접하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면 규개위에 심사를 요청해야 한다. 그저 행정부 차원만이 아니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법률안조차도 그 심사대상이다. 행정입법이 압도적인 현실에서 사실상 규개위는 법률안에 대한 사전 검토권도 가지고 있다.

규개위가 심사를 해서 규제의 신설 또는 강화를 철회·개선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그런데 그저 권고에 그치지 않는다. 권고를 받은 장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고 법에 정했다. 사실상 규개위의 결정에 장관이 따라야 한다.

규제개혁위원회 위원_경향DB

이렇게 강력한 규개위 위원장을 김앤장 상임고문이 맡아도 되는가? 법률회사는 변호사법에 따른 영업을 하는 곳이다. 변호사 업무의 특성은 그의 사적 의뢰인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최대한 지키는 것이다. 김앤장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주요 기업의 일을 맡아 하거나 할 수 있는 곳이다. 규개위가 심의하는 공공행정 가운데 이번의 담배 한 건에만 김앤장이 관련됐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김앤장이 대리한다는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정부 역할이 제자리를 잡지 않으면 억울한 시민이 희생자가 된다. 환경부는 1997년 3월15일에 옥시 가습기 살균제 성분(PHMG)을 “유독물에 해당 안됨”이라고 국민이 보는 관보에 고시했다(관보 제13559호 31쪽). 그 결과 이 성분은 산업에 진입했다. 만일 이때 환경부가 유독물이라고 심사했다면, 적어도 이 성분으로 인한 사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2012년 9월5일에야 “유독물에 해당함” “반복 노출되면 폐 손상을 일으킴”이라고 관보에 실었다(관보 제17840호 296쪽). 고작 정부의 역할이 갓난아이와 산모와 환자들의 귀한 생명이 희생된 뒤에야 뒤늦게 관보에 싣는 것이라면 이를 어찌 정부라 할 수 있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라의 자원을 더 많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곳에 분배해야 한다.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도록 꼼꼼한 행정법령을 만들어야 한다. 법치행정의 원칙에서는 법령의 꼼꼼한 뒷받침이 가장 중요하다. 돈도 법령이 있어야 좇아간다. 그러나 규개위는 이를 “규제”라고 부르고, 그 “신설”과 “강화”를 제어하는 선발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위원장을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몰리는 김앤장 상임고문이 맡고 있다.

만일 김앤장 상임고문을 계속하려면 규개위 위원장에서 사임하는 것이 맞다. 김앤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규개위 폐지법을 만들 때가 됐다. 행정부의 모든 법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에 뿌리가 있다. 행정 법령 위에는 국회가 있어야지 규개위가 국회를 대신해서는 안된다. 특정 행정기관에 행정 법령 전반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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