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칼럼=====/사유와 성찰

관점

opinionX 2015. 1. 16. 21:00

어느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아주 나빴는데, 본인과 가족들은 모르고 있었다. 일곱 살이 되어서 부모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안경을 맞추어 주었다. 아이가 난생처음으로 안경을 끼었을 때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는 지금까지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었던 거야?”

선명하게 다가오는 사물들에 충격과 경이로움을 느낀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대상을 놓고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이 인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타인의 몸이 되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처럼 경험하리라고 여기기 쉽다. 그 당연한 전제가 깨지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각(知覺)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낯선 문화를 접하면서 그런 상황에 종종 직면한다.

물리적인 시각 체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도 우리는 자기 나름의 관점을 취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개개인별로 완전히 다르다기보다는 일정한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범주에 소속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결속력과 유대감을 생성한다.

세계관은 곧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티의 해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념은 개개인의 존립 기반이 된다. 문제는 그것을 절대화하는 데 있다. 자기(들)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에 사로잡혀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가 가장 흔한 사례다. 또는 권력이나 부를 토대로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의 공간을 짜버리는 경우도 아주 많다. 오만(傲慢)이 하늘을 찌르면서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최근에 연달아 터지는 ‘갑질’의 횡포도 바로 그러한 폐쇄적인 세계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감 중인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씨는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언제나 제 뜻대로 일이 돌아가게 할 수 있었고, 성에 차지 않을 때 호통을 치면 모두가 굽실거렸다. 그런데 자신의 힘이 온전히 발휘되는 소우주, 그것은 안온한 거처가 아니라 품성을 왜곡시키는 밀실이었다. 늘 해오던 대로 직원들을 대했는데, 그렇게 해도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그 행태가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나자 비난과 지탄이 쏟아졌다. 자신이 군림하던 왕국의 경계를 알지 못하고 철부지처럼 행동한 결과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엄마는 지금까지 세상을 이렇게 보고 있었던 거야?”라는 깨달음처럼, 전혀 다른 세계가 있음을 발견해가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 자신을 상대화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이질적이고 불편한 존재를 얼마만큼 수용하는가가 곧 성숙의 지표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12일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감독관실로 들어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사회의 비극은, 인격의 발달이 유아기에서 멈춘 사람들이 권력과 돈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은 일절 용납되지 않는다. 비굴한 추종자들만 거느리면서 스스로를 우상화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타자에게 자기를 강요하는 것이 끝없이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다가 파국을 맞는다. 이른바 ‘지도층’의 추락은 대개 그런 시나리오를 따라간다.

하지만 착각과 미망은 권세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네가 본 건, 먹구름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는 시구처럼, 시대의 거대한 모순이 생의 진실을 왜곡하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실의와 절망에 빠져 세상의 종말을 선언하는 경우도 많다. 몇억원의 재산이 남아 있는데도 주식투자의 실패로 인생이 끝났다고 결론짓고 자살을 결심하여 가족까지 살해한 남자처럼, 성공과 행복에 대한 경직된 도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작은 좌절에도 무너져 버린다.

우리에게는 여러 벌의 안경이 필요하다. 그것을 번갈아 써보면서 다채로운 시선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타자에 대해서도 단정이나 통념을 벗어놓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대면해야 한다. 타인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오가다 보면, 다른 삶의 가능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신뢰할 만한 그 누군가와 온전하게 연결될 때 생각의 틈새가 열린다. 부조리한 세상을 헤치고 나갈 혜안과 기백이 생겨난다.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